지리산 성중 종주 2일차 - 난 고독하려고 왔는데

유 진 정 2025. 10. 4. 18:55

 

 

아침이 밝았다. 잔반통을 노리고 담비가 왔다. 

오트밀 한사발 끓여먹고 다시 출발. 

 

 

 

 

 

 

비가 그치니까 마음이 여유로워져서 식물구경하고 사진찍으며 천천히 이동
이건 멸가치

 

 

 

투구꽃
아름답지만 독초임. 이거 뿌리가 바로 그 사약 재료 부자. 예민한 사람은 만지기만 해도 붓는다고 함 이 또한 김전일 스러운 소재.. 

꽃말은 '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 '

 

 

 

 

 

 

 

 

 

 

 

 

 

 

 

 

 

 

 

 

 

 

 

요정같은 모습의 애이끼버섯

 

 

 

 

 

 

 

 

 

 

 

벽소령 대피소의 호화 화장실에서 볼일 보고 다시 발걸음을 떼니 뷰 비슷한게 보이기 시작

 

 

 

십계를 든 모세가 오를 것 같은 모습의 형제봉. 자연이 만든 조각들은 정말 장엄하지 않은가

 

 

 

 

 

 

 

 

 

 

 

 

곰버벨~ 곰버벨~ 세석대피소 다가오네~ (멀었음)

 

 

 

 

 

 

 

 

 

형제봉 지나서부터 날이 확 개었다. 눈 앞이 상쾌해짐 

 

 

 

 

 

 

 

 

 

 

 

 

 

 

 

 

 

 

 

야생표고
먹음직스럽지만 채취는 불법

 

 

 

흰목이! 맛이 너무 궁금해서 눈꼽만큼 떼서 먹어봤다. 아무 맛 안난다. 

 

 

 

 

선비샘

천대받고 멸시받던 화전민 노인이 죽어서라도 대접받고 싶어 샘터 위에 자신을 묻어달라 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물 마실 때 허리 숙이니까) 좀 불쌍한 전설

 

 

 

 

 

 

 

 

 

 

 

 

 

 

 

 

 

 

 

 

 

 

 

 

 

 

 

 

 

 

참회나무

 

 

 

 

 

 

 

높이 올라갈수록 고사목이 늘어나고 슬슬 가을색이 보이기 시작한다

 

 

 

 

 

 

 

 

 

 

 

 

다이빙대 같이 생긴 바위가 있길래 지나치던 부녀에게 촬영을 부탁했다. 
어제는 비 때문인지 올라가는 사람을 한 명도 못 만났는데 오늘은 사람이 꽤 있다. 

인사 할 때마다 혼자 가는 거에요? 안 무서워요? 라는 말을 계속 듣는다
딱 한 분 전두환 닮은 품위있는 노인장만이 종주합니까, 멋있네요 라고 말해주었다.

영감님 세 분이 모여있길래 인사하고 지나치는데
지리산에 불여우가 사나~? 왜이리 이뻐~? 라는 개구린 멘트가 돌아오길래 속으로 탈락!! 을 외치고 속력을 냈다. 

대피소에서 또 만났는데 혼자 온거냐며 말 걸길래 못들은 척 했다. 이런건 원래 쌩까줘야 됨

복수해야지 못된년 이라고 생각할 확률보다 만만한데 선 한번 넘어봐? 라고 인지할 확률이 높음 


https://digthehole.com/3910

 

개같은 질문엔 대답을 말아야

news.mt.co.kr/mtview.php?no=2021050907475185061 "20만원 줄게 같이 자자"…택시 승객에 '성매매' 제안한 기사 - 머니투데이밤에 택시를 탄 여성 승객에게 택시 기사가 성매매를 제안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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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오이풀

잎을 비비면 오이냄새가 난다는데 안 나던데? 꽃에서는 꿀냄새가 난다. 

 

 

 

 

 

 

 

 

 

 

 

 

 

 

 

1시쯤 대피소 도착. 세석평전 아름답구나

 

 

 

짜파게티와 전투식량을 한번에 먹어버리는 사치를 부려봤다. 

 

 

 

 

취사실의 산누에 나방

 

 

 

 

 

나뭇잎으로 위장 중인 으름큰나방
내가 이런 거 이름을 왜 다 아냐면 사실 모르고 구글렌즈가 가르쳐 주는거다 먹는 버섯 말고는 다 모름 

 

 

 

 

 

밥 다먹을 때 쯤 연하천에서 만났던 분들을 다시 만났다. 이야기 잠시 나누고 장터목을 향해 먼저 출발

스트레칭도 좀 하고 

 

 

 

 

 

 

 

 

 

 

 

 

 

 

 

 

 

 

 

 

 

 

 

 

뫼 山 자 같이 보이기도, 촛대처럼 보이기도 하는 촛대봉

작년 도반들과 여기서 일출을 봤다. 

 

 

 

 

 

 

 

 

 

촛대 맨 위에 오르면 세석대피소가 조그맣게 보인다. 

 

 

 

 

 

 

 

 

 

 

 

 

 

 

 

 

 

 

 

또 보니 반갑다. 연하선경 

발을 딛는 순간 갑자기 구름이 삭 걷히며 해가 나는게 환영받는 느낌

 

 

 

 

 

 

 

 

 

구절초

 

 

 

 

 

다 걷고 아쉬워 뒤를 한번 돌아보니 다시 어두워졌다. 

 

 

 

 

 

 

 

 

 

 

 

잘 생긴 구상나무와 고원의 바람이 빗질해 놓은 흔적

 

 

 

말불버섯. 푹 눌러서 포자한번 뿌려주고 간다. 

날씨가 좋으니 걷는게 아주 즐겁다. 지리산은 기운이 참 좋다. 왜 다들 꾸역꾸역 도닦으러 들어오는지 알 거 같다.
뜬금없이 출가해도 지리산 종주 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4시 15분 장터목 대피소 도착

대피소 직원들은 궁합을 맞춰서 배정하는 걸까?
어제 연하천 직원 분들은 둘 다 부드러운 인상이었고 이쪽은 젊고 활기차다. 
한분은 모히칸에 귀걸이를 하고 있고 다른 한 분도 아주 명랑하시다.

대피소 난방 더울까봐 창 아래로 배정해 달라고 부탁했다.
내일 흐리다길래 일출 못 볼거 같아 혹시 지금 천왕봉에 일몰 보러 올라갈 수 있냐 하니 4시 이후로는 입산 금지라고. 넹..

 

 

 

 

2층에 짐 풀고 누워 있는데 사다리를 타고 반짝거리는 대머리가 쑥 올라온다. 

오 레디컬한 여성인가? 싶었는데 머리가 연달아 쑥쑥 올라오고 보니까 스님들이시다. 아까 한 상상을 부처님이 들었나?
승복 위에 등산자켓들을 입고 오셨고 합장으로 인사를 했다. 

 

 

 

 

밀크티 제조해서 작년에 도반들이랑 커피 마셨던 나무토막에 앉아 마심 

 

 

 

 

 

 

 

 

 

 

 

 

 

 

 

 

 

연하천에서 만난 치과의사 부부, 죽어가는 분 / 여유있는 분 콤비와 함께 저녁 먹었다. 

갱상도 아주머니들도 곧 도착하셨다. 아 연하천 사람들이네! 하는 목소리가 반갑다.
하도 개고생하고 도착한 작은 대피소라 일시적 유대가 생긴듯 

티타늄 냄비 이야기 하다 티타늄이 항공소재라는 말이 나왔고 알고보니 여유있는 분은 은퇴한 공군이셨다.
죽어가는 분은 제조회사 대표님이라 대표/대령/박사1,2 로 호칭이 정해졌다. (박사의사 둘다 닥터니까 그냥 퉁침)
나는 안 물어보길래 대답 안 했다. 직업도 연령도 불명인 미스터리 여인으로 남겠습니다.

소시지와 주먹밥을 얻어먹었다.
장터목에서 사람들이 보통 식량을 모두 소비하고 간다고 한다. 잔반통 없에버린건 아주 좋은 아이디어
와이파이도 안 됐으면 좋겠다. 너무 편리하면 노잼이니까 

연하천에서 본 대표님은 분명 죽어가고 있었는데 밥을 드시더니 갑자기 만담가가 되어 대령님을 놀리기 시작했다. 
주먹밥 안에 진미채를 넣어줘 김도 붙여줘 장갑끼고 이렇게 저렇게 빚어줘
뭐 해달라고 엄청 부탁하는데 대령님 궁시렁거리면서도 다 만들어 주심 

놀다가 추워져서 자러갔고
이 분들이랑 내일 4시 50분에 만나서 천왕봉 같이 올라가기로 함. 아니 어쩌다 이렇게 된거지?

난 분명 좀 굶주리고 고독하려고 지리산 왔는데 폭식하고 수다까지 떨어버렸다. 쓸데 없는 말을 너무 많이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