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과 여성

재우며 사랑하라

유 진 정 2026. 4. 7.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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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교 - 사랑법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은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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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은 시간은
침묵할 것

사랑은 지키는 건 나를 지키는 겁니다. 내가 있어야 사랑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싶다면 나를 먼저 추슬러야 합니다. 
그가 떠나고 싶다면 울고불고 붙잡지 말고 떠나게 하는 겁니다. 
그가 잠들고 싶다면 깨어서 나랑 놀아달라고 애걸복걸하지 말고 편안히 잠들게 하는 겁니다. 
아무리 말려도 떠날 사람은 떠나고, 잠들 사람은 잠듭니다. 

(중략)
출발은 본능적이지만 과정은 이성적이어야 하고 결말은 예술적 또는 종교적이어야 하는 게 사랑입니다. 어렵죠. 

- 정신의학신문 : 황인환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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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교 시인의 사랑법을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여전히 울림이 깊다. 기사의 글도 아름답고 

저 <잠들고 싶다면 깨어서 나랑 놀아달라고 애걸복걸하지 말고 편안히 잠들게 하는 겁니다>
라는 문장을 읽는 순간 몇가지 기억이 동시다발적으로 떠올랐는데 

잠 안 재우는 사람들 의외로 좀 있다
보통 이제 잠들기 전 갈등 발생 시 
졸리니 일단 자고 내일 이야기 합시다, 할 때 네 그럽시다 가 안 되는 인간들이 있음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그래 기어이 자겠단 말이지?? 나 복도에 나가있을테니 편하게 자라
하고 나가길래 ah well 하고 일단 잤는데

아침에 일어났는데 사람이 없길래 문 열고 나가니까
진짜로 복도에 앉아서 개빡친 표정으로 날 노려보고 있었음
그니까 거기서 모기 물어뜯겨가며 밤을 꼴딱 샌 거임

아무튼 이런 상황이 몇 번 있었고 그때마다 난 잠들었고
아침에 파들파들 빡쳐있는 그들과 2차전을 벌여야 했는데

놀랍게도 그동안 그것을 걍 정신병적 증상으로만 치부하고
행동의 원인을 헤아려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길래 어제 잠깐 생각을 해봄

그 전에 놀러간 집에서 부인이 남편이 취해서 자러 들어가니까
못 자게 하려고 막 옷을 잡아당겨서 찢는 광경을 보면서 뭐지시발?? 하던 기억도 떠올랐는데

이게 그 나는 속상해서 잠이 안 오는데 너는 잠의 세계로 들어간다 -> 이거를
나를 버렸다 = 일종의 유기
라고 인식하니까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거 같음

그래서 아무리 본인이 비상식적 행위를 저지른다 한들
그들의 인지체계 속에서 상대는 언제나 냉담한 가해자이며 자신은 불쌍한 피해자인 거임 

그럼 여기서 상대는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하는걸까도 생각을 해봤는데 
나는 일단 항상 니 맴대로 해라 하고 방임했고 이러면 극한으로 빡쳐하는 거 같고 

결국 원인은 분리에 대한 불안이니
미워하는 마음 없이 어르고 달래서 안심시키고 재우는게 최선일 거 같긴한데
시발 부처님도 아니고 그걸 어케함 사랑 ㄹㅇ아무나 하는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