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풍경 등

유 진 정 2026. 6. 19. 00:21

 
이번 코스 선생님은 외국 분이라 L님이 공항에 픽업을 가셨다. 동행을 권유받아 따라갔다 왔다.
돋보기 안경을 쓴 선생님은 사진보다 마른체구에 명랑하고 꾸밈없는 태도가 매력적인 분이셨다.
마음이 정돈된 인간과 함께있으니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약을 하나 먹을까 하고 있던 두통이 사라졌다

1996년 거주지 뉴욕을 좀 벗어나고 싶어 참가한 첫번째 명상 코스 이후로 직장을 그만두고 봉사만 하고 살고 계신다고 한다. 핸드폰 없이 사신지 20년이 넘었다는데 이 정도면 거의 출가자에 가까운 삶이 아닌가.. 그렇게 살라 하면 못 할 거면서도 부러움이 앞선다.
한국과는 뭔가 인연이 있으신지 대학시절 룸메이트도 한국인, 첫 직장 상사도 3연속 한국인이셨다고 한다.
이천년대 초반 고엔카지와 수행하신 이야기도 들었다. 근데 그건 쓰면 안 될 거 같음 

장기코스의 조건에 대한 이야기도 다시 한 번 들었다. 심신이 건전하고 재정적으로 곤란한 상황이 아니며
파트너의 지지가 필요하다고 한다. 새 관계에 들어선 사람을 받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을 대단히 들뜨게 하여 수행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Kālaṃ āgameyya 칼람 아가메야

장기코스 법문에서 반복되는 말이라고 한다 
그 뜻을 풀이하자면 일종의 - 하지 않는 것 - 지금 당장 결론을 내리거나 행동하지 않고, 적절한 시간을 기다리는 것

참 띵언인게 이게 어렵다.
평정심을 잃게되면 조급해지고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말을 하거나 어떤 행동에 들어가고 싶어진다
이건! 해야 돼! 같이 분명히 알아차리고 행동력이 생기는 상황이랑은 다르다.
이럴 때 내리는 결정은 대체로 파괴적인 결과를 몰고오기 마련이다. 고통에서 달아나기 위해 내리는 결정이 더 큰 고통을 불러 일으킨다. 

예전에 이드페이퍼에서 행복을 추구하면 심연이 찾아온다, 차라리 불행의 요소를 제거해 나가는 것이 낫다
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대단히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불교의 코어도 결국 이것이 아닌가
쾌락의 추구를 절제하고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행하라는

선생님을 기다리며 L님과 공항의 분위기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공항에 오면 기분이 좋아지지 않냐, 대부분의 사람들이 즐거운 상태라, 는 말을 마치자마자 
이 사기꾼년아!!!! 라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쌍둥이처럼 머리를 금발로 염색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갈색으로 태닝한 두 중년 남녀가 격렬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어떤 문장이 등장하는게 아니라, 캐리어를 끌고 걷는 내내 서로를 씨발년아!! 씹쌔끼야!! 라고 목청이 터지게 호칭만 하고 있었다.
대단한 긴장도였다. 주먹이 나가지 않는게 신기할 정도
금전적으로 얽힌게 있는 느낌이라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도발을 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육도윤회에서 말하는 아귀도는 이런 상태를 비유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센터에서 하루 묵고 접수를 도운 뒤 서울로 올라왔다
전철에서 가방을 떨어트리고 다시 주워 무릎에 올렸다
몇 분 뒤 차가 정차하기 직전 얼굴이 흰 여성분이 열심히 인파를 뚫고 다가오더니 손짓을 한다.
손가락의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니 시트 밑 어두운 지점에 새로 산 보조배터리가 놓여있다

계속 지켜보다가 내가 주울 생각을 안 하고 있으니 직접 와서 알려준 것이다  
고마워서 머리를 숙이니 서둘러 전철을 빠져나간다. 잠깐 마주친 눈빛이 너무 따듯해서 약간 충격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