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에요

미얀마 띠보 Hispaw 십년 전 - 1

유 진 정 2022. 2. 17. 18:36

 

 

 


코시국 이년째. 여행을 못가니까 옛날 여행 사진을 찾아보게 된다

여러모로 기억에 남았던 미얀마 띠보에 대해 적어보도록 하겠다. 밍글라바 버마기행에도 나오는 내용인데 이제 연재한지 쫌 됐으니까 올려도 될듯.. 이게 벌써 십년전이라니.. 이십대 소녀(?)가 내일모레 불혹을 앞두고 있다니!

여행하다보면 진입과 동시에 어 여기 좋음 하게 되는 마을들이 있는데 필리핀의 사가다, 호주의 프리맨틀, 발리 우붓, 뉴질랜드 넬슨, 그리고 이 띠보가 나에게는 그랬음
기준은 모르겠고 그냥 그 atmosphere 랄까 그런게 딱 느껴짐 이것도 미생물 때문일까?



 

 

바간에서 띠보 가는 버스 타는 중 누가 찍어준건지 까먹음

 






띠보는 미얀마 북부에 위치한 샨 족 마을이다.
Hispaw 시뽀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작은 마을이지만 트래킹으로 유명해서 여행자 숙소가 꽤 있음

이 동네의 재미있는 점은 가게 이름에 죄다 Mr. 라는 존칭을 붙여놓았다는 점인데 과일쉐이크 파는집은 Mr. 쉐이크, 서점은 Mr. Book 식당은 Mr. Food 뭐 이런 식. 가게 주인들을 부를 때도 그렇게 부름

남자는 사이, 여자는 낭 이라고 이름 앞에 존칭을 붙여 부르는 샨 전통에서 기인된 것이라고

그 중 가장 유명한 Mr.는 Mr.찰스이다. 마을에서 가장 큰 호스텔이고 나도 여기서 묵었음

 

 

 

 


걍 평범한 동남아 숙소. 근데 로비가 호스텔치고 삐까뻔적했음

왜냐면 주인이 빌딩을 하나 더 지었는데 거기는 신축호텔식으로 가족 단위 여행객이나 중년 여행객들을 묵게끔 해놓았고 그 와중 로비도 리모델링 함

 

 

 

 


숙소 맞은 편 학교에서 가열차게 구구단을 외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 당시(2012) 미얀마는 50여년만에 민주선거를 치뤘고 수치가 이끄는 NLD당이 승리를 거둔 직후라 국민들이 다들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부풀어 있는 상태였음. 지금 상황을 생각하니 안타깝네

로비에선 관광사업하는 더치 아저씨랑 잠깐 대화를 했는데 버마 여행 보이콧이 풀리니까 물가가 두세배 올라서 예전에 투어 예약한 사람들한테 오른 가격을 적용시키느라 자기가 상당히 고생 중이라며 불만을 토로했음

그리고 영어할 줄 아는 훈남 호스텔 직원이랑도 잠시 이야기를 했는데 휴일이 한 달에 한 번이라고 해서 충격 받았음
그리고 앞 학교 애들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 15시간 수업한다고 해서 2차 충격 받음

근데 직원이 하나도 안 지쳐 보이고 눈이 엄청 반짝거렸음. 저축도 하는 중이고 여친도 있다고..
우리나라 고도성장기 국민들도 저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함

짐 풀고 동네 한바퀴 돌러 나갔다.

 

 



너무 대칭적이라 좀 미친것 같아보이는 건물

 

 

 

 

 

고양이 많음



 

 



 

 

동네 시장. 대나무로 만든 모자랑 머스터드 색 피셔맨 바지를 5불 주고 샀다.




 


바지 왕편하고 재질도 좋고 예쁨. 띠보 머무는 동안 입고 다녔더니 서양애들이 어디서 샸나고 겁나 물어봄

한 명은 내가 직접 가게로 데리고 갔는데 상인이 얘한텐 10불 부르길래 어젠 5불이라고 했자나요 했더니 깎아 줌. 행색따라 가격 차등 적용하나봄





 

 

치과 간판



 

샨족 NIKE. 저거 그냥 사올걸 지금보니까 힙터지네.. 만들어지게 된 과정도 상상하니까 재밌음

 

 




 




 




 




 

띠보의 큐클럭스클랜




 


혼자 여행 온 한국 여자분 만남. 이영애를 닮은 초미인이었음. 말은 잘 안통했지만..

가끔 초미인들 중에 대화가 이상할 정도로 안 통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유가 뭘까? 일종의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존재들이라서?

아무튼 미인분 보면서 어떻게 동남아 여행을 하는데 피부가 저렇나 싶었는데 저녁때 팩을 붙여주심. 감사..

위의 사진은 Mr. 쉐이크가 찍어 주었고 담날 갔더니 사진이 프린트 되어 벽에 붙어있었음
동네 돌고 쇼핑하고 쉐이크 때리다보니 해져서 씻고 잠




 

 

 

 

 

 


다음날은 호스텔에서 아점먹다가 데미안과 폴린이라는 프렌치 커플(사진)과 합석했는데 좀 이상한 일이 있었음

웬 노인이 와서 막 버마어로 우리한테 말을 거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까 우리는 걍 ??? 하고 보고 있었고
그랬더니 노인이 막 답답해하다가 내 손을 낚아채더니 꽉 쥐어짬

바로 호스텔 직원이 달려와 노인을 쫒아냈는데 손 쥐어 짤 때 노인 표정이 되게 화나고 슬픈 표정이라 이상했음. 뭔 말이 하고 싶었던 걸까?


사실 이 동네가 사연이 좀 있음

띠보는 샨 스테이트인데 (미얀마는 다민족 국가) 샨의 마지막 왕은 샤오짜셍이라는 사람이었음

샤오짜셍은 미국으로 유학을 가 광업을 전공했고 그때 만난 오스트리아 여성과 결혼을 함
결혼해놓고도 자기가 왕이라는 거 말 안해서 마누라가 버마 들어온 뒤 환영 인파보고 깜놀했다고

귀국 후 샤오짜셍은 자기 땅을 백성들에게 다 나눠주고 학교를 세운 뒤 광물 사업을 추진했음 ( 북부에 광산이 많아서 그 이유로 광업을 전공했던 거 같음 )
마누라도 배운 사람이라 같이 개혁 추진을 열심히 했는데 곧 군부의 주도로 쿠데타가 일어남

샤오짜셍은 체포되고 마누라는 외국인이라 가택연금을 당함
샤오짜셍은 유배 도중 실종되었고 사망한 것으로 추정됨. 생전에도 자기한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대충 예감했던 거 같음 부인한테 혹시 뭔 일 생기면 나 기다리지 말고 너네나라 돌아가라고 했다고 함

부인은 연금이 해제된 후 두 딸과 함께 본인의 나라로 귀국했고 버마에서의 삶을 기록한 책을 출판함 (수익은 미얀마 난민들을 위해 기부된다고)
남겨진 샨 저택은 샤오짜셍의 조카 Mr.도날드가 관리 중

그리고 Mr.찰스는 트레킹 가이드로 이름을 날리다 호스텔을 세운 사람인데, 사업을 확장하는 도중 경쟁자들을 압도하기 위해 군부와 손을 잡았다는 소문이 있음

2005년 Mr.도날드가 군부의 허락없이 관광안내를 했다 등의 뜬금포 죄목으로 체포가 되었는데, 그 때 이후로 Mr. Book이 Mr. 찰스에 묵는 여행자들과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걸로 보아 동네사람들만 아는 뭔가가 있긴 한듯

암튼 그래서 혹시 노인이 전달하고자 하던 메시지도 야 너네 숙소 주인 개자식이다 같은 거였나 하는 생각을 잠깐 함. 물론 내 뇌피셜이고 단순히 미친 사람이었을 수도 있음


 

오전에는 뭐 했는지 기억이 잘 안나고 오후에 데미안 폴린과 함께 남똑 폭포를 보러 감. 사진은 동네의 명물 국수

 

 

 

늦게 출발해서 해가 막 지기 시작

 

 

 




 

 




 

 




 

 




 

 

시원하겠다 버팔로야




 

 

 

 


도착한 남똑 폭포
둘은 사진을 찍고 나는 속에 수영복 입고 와서 잠깐 물 속에 들어갔다가 나옴

돌아오는 길엔 완전히 해가 져서 손전등을 가지고 있던 데미안의 등 뒤에 폴린과 함께 딱 붙어서 옴
중간에 말린 옥수수 더미를 봐서 조난당하면 여기로 돌아와 옥수수를 먹어야지라고 생각함

그렇게 한참 밤길을 걷는데 폴린이 이런데엔 아마 뤼셸이 있지 않을까? 하길래 뤼셸이 뭐야? 하니까 그 있잖아 뤼셸.. 하길래 프랑스어로 귀신을 뤼셸이라고 부르나 했는데 반딧불이 딱 보임
폴린은 그래 저거 뤼셸!이라고 외쳤음. 영어로는 firefly라고 가르쳐줌

아무튼 반딧불이 엄청 많았고 아름다웠음
하늘에 별도 반짝반짝해서 마치 별이 논으로 내려오고 있는 느낌. 나무는 얌전한 크리스마스 트리같고..

그리고 마을 쪽으로 진입하니까 사람들이 집에서 손전등 쏴서 우리 길을 비추어줌. 그 조용한 친절은 참 감동적이었음
어떤 집 라디오에선 쟈니캐쉬의 Ring of Fire가 흘러 나오고


 

 


그렇게 트레킹을 마치고 무사귀환



 


어제 만난 미인분 + 호스텔에서 만난 독일 연구원 두 명과 밥먹으러 감. 뭐 연구하는지 들었는데 까먹었고 얘들이 쐈음 핫한 아시안 칙들이랑 밥먹어서 좋았을듯ㅋ

이 사진 나중에 친구가 보더니 니가 저 찹스틱으로 저 남자한테 굉장히 안 좋은 짓(?)을 하려고 하는 거 처럼 나왔다고 함

 

 

 

 


돌아와선 데미안 폴린이랑 맥주 한 잔 했는데 사람이 한 두명씩 모여들더니 술자리가 커졌음. 아까 독일 박사님들이 맥주도 쏨. 부국인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나는 이때 EU경제통화동맹정책이라는 화두를 던지면 독일인들이 급발진한다는 사실을 호주에서 배워온 상태라 얘들한테도 한번 떤져봤는데 갑자기 둘이 토론 졸라 격렬하게 시작해서 신기했음. 그것도 영어로 ㅋㅋ

그리고 저 빨간 옷 입은 미국인 아저씨랑 나도 말싸움 겁나 함. 아저씨가 자기 양곤에서 매춘했다고 자랑하길래 ( 버마에서 마약 매춘 국내정치 이야기는 매우 금기시 됨 ) 그게 뭐 자랑까지 할 일이냐고 했다가..

아저씨는 공급이 있으니 수요가 있는거라고 주장했고 나는 그 반대이고 이렇게 급변하는 사회에서는 소비를 하는 쪽이 분위기를 주도해 나가게 된다 뭐 그렇게 부딪혔는데 결론은 안 났고 내가 진 거 같았음. 왜냐면 흥분했거든

아무튼 그렇게 여기저기서 의견이 대립하는 격렬한 술자리가 되었고 지금 생각하니 다 내가 문제네 선동가 ENTP 종특ㅇㅈ?

술자리 파하고 방으로 돌아온 뒤 아침의 이상한 노인과 손전등으로 길 비춰주던 마을사람들, 태평한 미국아저씨를 번갈아 생각하다보니 머리 아파져서 일기쓰고 잠


 

 

 

-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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