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은 내가 H와 헤어져야겠다고 결심한 날 들은 말인데 상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연극하다 입시강사로 전업한 동기 S와 이공계 교수였던 H, 나
이렇게 셋이 H의 집에서 술을 마시며 저 뮤직비디오 참 잘 만들었네 못 만들었네 류의 잡담을 하던 중 등장한 발언이었음
전혀 격앙된 분위기는 아니었고 평범하게 마시던 자리였는데 만취한 H가 뜬금없이 상을 주먹으로 쾅쾅 내리치며
" 예술하는 새끼들이 뭐가 그렇게 잘났어! "
를 외쳤고, 찰나의 정적이 흐른 뒤 S는 이 새끼 병신이네 야 이런 새끼랑 만나주지마. 라고 일갈한 뒤 퇴장
나는 너무나 쪽팔렸기 때문에 팔짱을 끼고 서서 H를 노려보았고 그러자 그는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라며
오열하다 쓰러져 잠듬
당시엔 너무너무 속상했는데 지금 복기하다보니 이거 완전 홍상수 영화 각임ㅎ
H의 기발함과 안정적 직위 등은 매력적이었지만 주사를 감당할 자신은 없었기 때문에 상담을 권유한 뒤 헤어졌고,
저 대사는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난다.
예술하는 새끼라고 총칭했지만 걍 연애 중 나로 인해 적립된 불만을 내포한 발언이었다고 생각하고
사실 스스로를 예술인이라고 지칭하기는 쑥스러운 지점이 많은데 인증을 받은 거 같기도 해서 약간 고맙기도 함
아무튼 그 질문이 떠오를 때마다 그래 예술하는 새끼들의 잘난 점은 뭔가, 하고 헤아려 봤는데
(결점은 굳이 안 찾아봐도 너무 잘 알겠음)
자기기만적인 요소가 적은 경향이 있어서 예술하는 인간들을 만날 때 마음이 편한 거 같음
[타락하면 더 심각하게 기만적이 되는 거 같긴 한데 (e.g.크리스토퍼놀란) 그 경우는 여기서 다루지 않겠음]
속에 있는게 귀여운 것이던 빻은 것이던 간에 그것을 변명하지 않고 드러내는 점이 좋고
장르가 순수로 갈수록 이 경향이 강해지는 거 같음
내가 인간을 보며 고통받는 상황은 주로 사람들이 너무 투명하게 자기 기만성을 드러낼 때인데
예를 들자면 불행해보이는 인간이 자신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공표할 때라던가
개인적 열등감을 대의와 선량함으로 아득바득 위장할 때라던가
물론 인간은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누구나 기만적인 면을 조금씩은 가지고 있고, 나 또한 그렇지만
그것을 의식하고 있느냐 자각없이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느냐의 차이는 크다고 생각함
아무튼 후자를 지켜봐야 할 때 괴롭고 그래서 예술충들이랑 있을 때 마음이 편함
사실 창작을 하고 안 하고는 중요한게 아니고 뭘 하던간에 걍 사람이 저런 면이 좀 있어야 좋아지는 거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