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이라고 생각한다.
독도 잘 쓰면 약이 되듯이 고독도 적당하면 삶의 자양분이 되어준다.
몇년 전 집 정리 중 이십대 초반 쓰던 폴더 폰을 발견한 적이 있다. 뭐가 들어있을지 궁금해서 충전기를 찾아 켜봤다.
여행을 떠나기 직전까지 쓰던 폰이었는데 약간 놀랐다.
송별의 문자가 엄청나게 많이 와 있었던 것이다.
일주일에 사람을 한 번 만날까 말까하는 삶의 형태가 고착된 지 한참 된 후 였던지라 과거의 스스로가 낯설게 느껴졌다.
매일같이 사람에게 둘러싸여 지내던 날들이었다.
그리고 맨날 울면서 잤다. 그 때만큼 인간(나 포함)을 혐오한 적이 없었다.
여행 중에도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이동 중이니만큼 관계들이 캐주얼하여 인간의 부정성을 목격할 일이 적었고,
사람들의 건강함과 따듯함에 인류애가 적립되던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평생 살 수 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땐 행복해서 아무 것도 안 만들었다.
돌아와서는 뭘 좀 만들어 보리라, 더 이상 관계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은둔 생활을 시작했는데 (여행 전 어울리던 사람들을 만나보니 너무 노잼이기도 했음)
몇달 간 매우 만족감을 느꼈고 그렇게 한 해를 보내고 나니 살인계획을 짜고 있었다.
A라는 분이 있었다. 얼굴만 몇 번 본 분이었는데 그 분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입을 모아 그의 인품을 칭송했다.
어느날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장례식을 다녀온 모 양은 사람이 정말 많이 왔더라구요 라는 말을 했다.
그러더니 내가 죽어도 저만큼이나 사람이 올까 싶었어요 라길래 미친놈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이 아무리 오면 뭐하냐고 자살을 했는데
장례식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오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고독이 더 컸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매일 울면서 자던 인싸시절을 떠올렸다.
공허한 관계는 없느니만 못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사회와 격리해서는 안되고
가야할 길을 갈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인연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