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타면 너무 좋아

일기예요 2021. 9. 23. 22:32

며칠 전 택시 아저씨와의 일화를 적으며 아저씨들이랑 덜 싸우게 되었다고 썼는데 쓰자마자 부딪혔다.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횡단보도 앞에서 왼쪽 길로 들어가려고 서행하다 꺾었는데,
뒤에서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던 경주용 자전거 세대가 달려오다 그 바람에 급정거했다.

키기긱 소리가 날정도라 깜짝 놀라서 골목 앞에서 멈췄는데 아저씨가 뭐라뭐라 소리를 지르길래
아니 횡단보도 앞에서 속도를 그렇게 내는 쪽이 잘못이지 얼탱이가 없네!!!!! 라고 개처럼 짖었다.

사실 뒤에 '븅신' 이라고 덧붙이려다가 말았다. 이러면 이제 정말 개싸움 나는거다.
왜냐면 세명 중에 늘씬한 아줌마가 한 명 껴있었기 때문에 븅신소리 들은 아저씨들이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된다.
뭐 그렇게 좀 왈왈거리다 서로 갈 길 갔다.

븅신이라고 안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할 필요까지는 없는 사안이기 때문에
그리고 저 븅신에는 감정이 담겨있다. 의견의 개진이 아니라 '나한테' 소리를 지른게 빡치기 때문에 나오는 방어적 반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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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있길래 잠깐만요!를 외치고 자전거를 끌고 탔다.

열림 버튼을 눌러준 것은 아주머니였다. 감사합니다. 하고 타다가 이번엔 내리는데,
등산복을 입은 아저씨가 사람이, 네 명이나 타고 있으면, 다음 엘레베이터를 타야지, 경우가 없어, 하고 궁시렁거리길래
그냥 대답 안 했다.
' 아니 그렇게 경우 따지실거면 두 다리 멀쩡하신 분이 계단을 이용하시지 그랬어요~ ' 가 목구멍까지 올라왔는데 말았다.
아저씨는 길이 갈리는 지점까지 같은 내용으로 계속 투덜거렸다.
그것을 들으며 그의 흰머리가 난 옆통수를 바라보았다. 귀까지 새빨게 진게 상당히 화가 난 것 처럼 보였다.

네가 한 욕을 내가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그 욕은 온전히 너에게 돌아갔다. 라고 했다던 석가모니의 일화를 떠올렸다.
나의 경우 일단 저 계단을 이용하시지 그랬어요~ 라는 생각이 떠올랐고, 집에 와서 블로그에 글까지 적고 있다는 점에서 더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왜 예전에는 저런 상황에서 그렇게까지 빡쳐했을까 생각해봤는데 위의 일화에서처럼 '나'를 공격해서도 있지만, 그냥 인간의 비루하고 흉한 모습을 보면 짜증이 확 났다.
지금도 그렇다. 혐오와 짠함이 뒤섞인 복합적인 감정인데 대게는 분노로 표출된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내가 자기 맘에 안들게 행동했다고 빡쳐하는 저 아저씨나 저 아저씨가 내 맘에 안들게 행동했다고 빡쳐하는 나나 뭐가 다른가? 둘 다 자기가 너무 소중하니까 저러고 있는거다.

일전에 명상원에서 만난 J씨가 한국에 잠깐 들어와 단체명상을 했는데, 사는게 수행같다던 그날 그의 말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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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s 0 : Comments 13
  1. hint 2021.09.24 07:01 Modify/Delete Reply

    4~50대 혹은 그 이상 사람들이 개빡치게 하는 순간이 의외로 많이 찾아옴.
    화를 내봐야 적반하장인 경우가 대부분이니,, 웃는것 까지는 안되더라도 [가르쳐주]는 형태로 말을 섞으면 의외로 효과가 훌륭함.

    [횡단보도에서는 속도 줄여서 타는겁니다 이번기회에 배우기실 바라요.] 라고 들이밀어 주면 저 인간들 한동안 계속 생각나서 빡칠거임.

    • 갱갱이 2021.09.26 22:58 Modify/Delete

      오 꿀팁 역시 역훈계는 꼰대들을 화나게 해

  2. 2021.09.24 14:20 Modify/Delete Reply

    자전거가 좁아터졌는데 굳이굳이 들어와서 나를 친게 아니라면 경우가 없다 소리 정도까지 나올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걍 맘의 여유가 없는 사람이구나 합시다
    너도 너도 나 자신이 너무 소중하기 때문이란 말이 인상깊네요 그럼에도 참을 줄 아는 진정님이 진정 으른같습니다. 전 아직도 애새끼라 잘 못참음 ㅠㅜ

  3. 펑크 2021.09.24 17:35 Modify/Delete Reply

    사는게 수행이라 살아가기만 하면 매일 아주 조금씩 나아진다고 생각해요

  4. ㅇㅇ 2021.09.24 23:07 Modify/Delete Reply

    글만봐도 개빡치는데 대단하시네요 전 일단 욕박고 시작했을듯...

  5. ㅇㅇ 2021.09.25 01:49 Modify/Delete Reply

    전 그럴때마다 많이 빡쳤나보네.. 역지사지로 한 번 쑥 훑고지나가는데 회피성향이라 화낼 상황이 아니라고 합리화를 한 건지 순간적인 부처가 된 건지 몰겠음

  6. ㄱㄱ 2021.09.25 09:20 Modify/Delete Reply

    석가모니 말씀이 넘 좋네요.
    배우고 갑니다.
    윗분처럼 나도 회피형이라
    그냥 넘어가긴하는데
    상황을 곱씹을때가 있어서
    아직 욕을 토스할 수준은 안되는거같네요.
    그렇다고 뭘 해야 되는지 모르겠고 걍 살아봅니다

  7. ㅇㅇ 2021.09.25 13:10 Modify/Delete Reply

    유진님,
    혹 명상하며 관찰했던 생각들
    기록하시나요?

  8. ㅇㅇ 2021.09.25 14:50 Modify/Delete Reply

    저도 며칠전에 빡치는 일 있었는데 병먹금한거 후회하고 뭐라고 더할걸하고 빡쳐했는데 이 글보니까 그냥 적당히 대응한거 같네여

  9. ㅇㅇ 2021.09.26 06:43 Modify/Delete Reply

    제목보고 권나무 노래 아시는구나 생각했어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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