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험 마이크체크 원투원투
윤회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이제 나는 윤회를 믿지 않는다. 믿는다는 건 이해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윤회는 존재하는 흐름이자 변화이다. 띵상을 하다보니 그 사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삽베 상카라 아닛짜 sabbe saṅkhārā aniccā
형성된 모든 것은 무상하다는 뜻이다.
사람의 마음은 밥먹기 전이랑 먹은 후 다르고 시간이 주어지면 다이아몬드도 변한다.
이 우주 안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법칙 안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점은
변화하는 것들이 변할 뿐이지 소멸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의미를 잘 생각해보면 꽤 두려운 사실이다)
물이 끓으면 기체가 되고 기체가 차가운 것에 닿으면 에너지를 방출하며 다시 액체가 된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잘 알고 있고
그래서 나도 초딩 때는 윤회란 내가 죽고 몸이 썪어 비료가 되어 나무가 되는 과정이구나,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초기불교의 윤회는 물질의 순환이 아닌 의식의 연속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명상 중 우리는 마음이라는 것이 끊임없이 움직이며 어떤 상태에서 다음 상태로 넘어가는 순간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연속적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마음은 고정된 실체가 아닌 매 순간 대상에 반응하여 일어났다 사라지는 개별적 사건들의 집합이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라는 가사처럼
앞선 마음이 소멸하며 발생시킨 에너지는 다음 마음의 발생에 조건으로 작용한다.
소위 말하는 나, 라는 것의 성질 역시 이러하다. 불변하는 자아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하여 불교는 아트만, 영혼의 존재를 부정한다.
여기까지 이해했을 때는 그래서 수행이 일종의 전지구적 조별과제라고 생각했다.
개개인이 마음을 갈고 닦으면 전체불행의 파이가 작아지고, 그래서 결국 개개인이 혜택을 받을 확률이 늘어나는 시스템이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이제 ' 고정된 실체가 없다매 그게 어케 다음 생으로 이어지냐??? ' 라는 모순이 발생한다.
' 그럼 조별과제 버스타는 새끼들도 있겠네?? 나도 무임승차해야징 ' 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고

기원전 2세기의 그리스 국왕 메난드로스 1세도 같은 의문을 품었다.
인도의 비구 나가세나는 이에 대해 이렇게 답한다.
왕: 옮겨가는 자(나)는 없는데 재생은 된다고요? 구라 ㄴㄴ 그리고 그러면 어떤 미친놈이 수행을 하겠음?
비구: 초 두 자루가 있다고 생각해보셈. 불이 붙은 초를 기울여 다음 초를 켰을 때 그 두번째 불꽃은 첫번째 불꽃과 동일함?
왕: 아니
비구: 그럼 쌩판 상관없는 다른 불꽃임?
왕: 그것도 아닌듯
비구: 대왕이시여, 그와 마찬가지로 옮겨가는 자는 없으나 재생은 있는 것입니다.
앞의 불꽃 자체가 뒤로 이동한 것은 아니지만 앞의 불꽃은 뒤의 불꽃을 만드는 '조건' 이 된 것이지요
인과의 흐름이란 이런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재생연결식이라는 개념이 등장함
죽음의 순간, 그 찰나에 발생하는 의식을 의미하는데
평생동안 생성을 반복해온 의식, 즉 업, 카르마가 어떤 종류의 재생연결식이 떠오를지를 결정지으며
그것에 의해 다음 생, 즉 다음의 의식이 시작된다는 것이 불교의 윤회사상임
(이건 걍 내 사견인데 치매환자들의 임종 직전의 명료함Terminal lucidity 같은 현상도 이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음)
그럼 이제 ' 미친 그럼 평생 마음을 닦으며 살아왔는데 그 순간에 뭔가 삽질해서 사악처에 떨어지면 어캄??? '
하는 불안이 떠오를 수도 있는데 하루를 마치고 잠드는 순간을 생각해보자.
개빡친 날은 잠드는 그 순간까지 기분이 뒤숭숭할 것이다. 충실한 하루를 보낸 날은 평화로운 마음으로 잠에들고
명상원 10일 코스 법문 중 고엔카지가 ' 평생 울며 살아놓고 죽을 때 웃으리라 기대하지 마십시오 ^^ ' 라는 말을 지나가는 농담처럼(!!!!) 하는데 마음을 수양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 때문이다.
( 이 재생연결식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업의 동력을 완전히 소멸시킨 상태가 바로 아라한, 열반의 상태인데 이게 어떤 상태인지는 나도 모름으로 생략. 심지어 붓다께서도 이 상태에 대한 직접적인 기록을 남기지 않으셨음. 어차피 언어로 설명 불가능하다고 )
요즘 아, 명상은 죽음의 연습이구나 라고 느끼는 순간이 많다.
자극적인 이벤트가 있었던 하루를 마치고 방석에 앉으면 몇 초 지나지 않아 그 순간 느꼈던 감각과 감정들이 폭풍처럼 몰아친다. 그리고 그것이 자각되었을 때 다시 호흡으로 돌아옴으로써 마음을 진정시키게 되고
사띠빳타나 숫따 코스에서는 그래서 잠드는 순간과 눈 뜨는 순간의 감각을 알아차리는 연습을 시키는데
실제로 하다보면 잠드는 순간을 자각할 수 있게된다. 그 과정에 한동안 큰 흥미를 느꼈는데 그게 죽음과 재생의 순간을 대비시키는 연습이라는 생각은 못 했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불교는 닝겐의 의식이 인과의 흐름 속에서 연속성과 연관성을 가진다는,
어케보면 너무너무 당연한 진리를 수행으로 터득하여 윤리적 삶을 삶고 마음을 자유롭게 만들라는 철학이다.
 진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