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세계

노오력을 해야지 VS 이게 다 자본주의 때문이다

유 진 정 2026. 6. 25. 20:17

Z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이게 다~~ 자본주의 때문이다! 스마트폰 때문이야!!
라는 말을 하면 꽤 티나게 불편해 하는데
이런 사회부적응자 같은 소리에 맞장구를 쳐버리면 그 또한 문제라 어느 면에선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쇼킹한 범죄나 인간의 병듬을 목도할 때 나는 구조를 먼저 탓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문제의 원인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게 되기 쉽고 그러면 사람이 미워지고 사람을 미워하는 일은 되도록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노오력을 해야지! 다 니가 병신이라 그래,
라는 생각을 한때 열심히 했다
나는 안 그런데 너는 왜 그래? 류의 얄량한 우월감과 루저처럼 보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 남탓만 하던 부친에 대한 분노 등이 작용했던 거 같다.

아무튼 사고가 이렇게 가니까 체제에 대한 불만은 잦아들었지만 그 자리에 인간에 대한 혐오가 대신 들어섰고
타인을 끊임없이 비난하는 과정은 처음에는 즐겁고 나중에는 괴로웠다.

그래서 이제 대응책이랍시고 세운게

남의 부정적인 면 -> 상황 때문
나의 부정적인 면 -> 나 때문

이라고 생각하면 되겠군, 이었는데
사실 이것도 뭔가 억지같아서 찝찝함이 남는다

게다가 00때문이라고 탓을 한다는 점에서 방향성만 바뀌었을 뿐 못마땅함은 그 자리에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아무튼 그래서 생각난 김에 이 사안에 대한 초기불교적 관점을 클선생한테 정리해달라고 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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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 상황 탓, 나 → 내 탓

이 공식의 찝찝함은 구조 자체에 있다. 
귀인(attribution)의 방향을 바꾼 것이지, 귀인하는 행위 자체를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기불교가 이 문제를 보는 방식은 조금 다른 지점에서 시작한다.
범죄나 병든 인간을 목도할 때 우리가 느끼는 불쾌감, 혐오, 경멸, 혹은 그 반작용으로서의 "시스템 탓"
이 모든 반응은 사실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

" 이것은 이래야 했는데 그렇지 않다 " 는 저항이다. 빠알리어로는 도사(dosa), 성냄·반발의 계열이다

개인을 혐오하는 것도, 시스템을 혐오하는 것도 대상이 다를 뿐 그 마음의 성질은 동일하다. 
그래서 귀인 대상을 바꿔도 찝찝한 것이다. 냄비를 옮겨 담은 것이지 불을 끈 게 아니다.

그렇다면 초기불교의 솔루션은 무엇인가.
연기(緣起)이다.
연기적 관점에서 보면 어떤 행위도 단일한 원인을 갖지 않는다. 
그 사람이 그렇게 된 데는 무수한 조건들 - 유전, 가정, 사회, 전생의 습기(習氣), 그 순간의 감각 접촉까지 - 이 얽혀있다. 

이것은 "시스템 탓이니 개인은 면책"도 아니고 "개인 탓이니 시스템은 면책"도 아니다.
탓할만한 고정된 주체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아나따(anattā), 무아이다.
자책은 자아를 실체화할 때 생기고, 타인 혐오도 타인을 실체화할 때 생긴다.

실천적으로는 이렇게 된다. 귀인 방향을 정하는 대신, 
"이 결과를 낳은 조건들을 볼 수 있는가" 로 질문을 바꾼다. 

그러면 분노 대신 이해가, 이해 다음에는 연민이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연민은 동정이 아니다. "조건이 달랐다면 나도 저럴 수 있다" 라는 냉정한 인식에서 나오는 태도다.

혐오를 피하는 방법은 "올바른 대상에게 탓 돌리기"가 아니라 
탓의 구조 자체를 해체하는 것이라는게 초기불교가 내놓는 해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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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고보니까 모르는 내용도 아닌데 체화에는 역시 시간이 걸리는군

그리고 이거 situationism vs dispositionism 가지고 좌파우파 박터지게 싸우는 내용이잖아

https://digthehole.com/431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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