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더와 곤더 2

유 진 정 2026. 9. 11.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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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더와 곤더 1

아래는 내가 Z의 집을 처음으로 방문한 뒤 기록한 메모이다 연식이 꽤 된 빌라 십년째고양이 제단 호더같은 미친 방 하나. 책 땜에 바닥 내려앉을 거 같음깨끗한 주방 작업방은 안락침실에 두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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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기록한지 벌써 넉달이 지났군

호더는 저 글의 썸네일(퍼온 거)에 컴플레인을 걸었다
블로그 들어오는 사람들이 자기 집이 저런 줄 알 것 아니냐는 것이었지만.. 사실 저랬음 

물론 모든 방이 저렇진 않고 방 세 개 중 하나가 저 꼬라지
십자가와 포인세티아 화분이 놓여져 있는 작업방의 정돈된 책상에선 Z의 성실함을 느낄 수 있음

그리고 몇 걸음 걸어 호딩방에 도달하면 그의 실성함을 느낄 수 있음 

그곳엔 2천여권에 달하는 장서들이 정체불명의 온갖 잡동사니와 뒤얽혀 음기를 뿜어내고 있었고 
이 저주받은 장소에서 생성되는 고농도 미세먼지와 유독한 책곰팡이 포자에 기관지가 작살날 거 같길래 Z의 의중을 좀 떠봄

일단 저번에 혼자 있을 때 버려버린 묵은 곡식에는 별 말을 안 하길래
아주 찐은 아니구나, 희망을 엿봄 진성호더는 이런 합리적 배출에도 지룰함

암튼 저 방을 치우자고 하니 그건 큰 일이라며 나중에.. 나중에.. 를 외치길래
영업맨의 발부터 집어넣기 기법을 사용해 그럼 거실에 있는 스탠딩 데스크 아래쪽이라도 치우자고 건의함

이 스탠딩 데스크는 이미 오래 전 본연의 기능을 잃었음
아래 쪽에 안쓰는 족욕기 온열방석(돌아가신 고양이용)등등 잡동사니가 빼곡히 들어찬 상태 

족욕기는 당근에 내놓으라 하고 온열방석은 요거트 가끔 만든다길래 킵함
여기는 뭐 면적이 적으니까 금방 치움. 치우고 나니까 검은색 먼지가 잔뜩 나옴

Z는 어떤 신념에 의해 물걸레질을 하지 않는데 (청소기는 돌림) 고집 부릴 때보면 기안이 따로없음
쓸데없이 복잡한 구조의 통판으로 산 물걸레 키트가 호딩방에 떡하니 놓여져 있다는 점이 지금 생각해도 킹받음
여러분 명심하세요 물건은 단순해야 손이 가는 겁니다 

아무튼 책상 아래를 비우고 거기는 내 좌석으로 쓰기로 함
창문 앞이고 노을이 보여서 여기 앉으면 기분좋음

그리고 며칠 뒤 기세를 몰아 호딩방도 정리 들어감
Z를 자꾸 호더라고 부르니 그럼 너는 곤도 마리에 같은 짓을 하니 곤더다 하길래 포스팅 제목이 호더와 곤더가 됨

아무튼 호딩방을 함께 치우기 시작하니
구여친이 준 루믹스 빈티지 디카 (당시엔 빈티지가 아니었지만 이제 유행이라 비싸짐)
삭은 안경테
고양이 생전 사놨지만 쓰이지 못한 장난감 (For sale: cat toy. never used)
고양이 간병 중 사용한 주사기들
고양이 화장실
고양이 화장실 모래
고양이 털 
삭아서 가루가 되는 정체불명의 플라스틱 물체
코로나시절 방역물품들
자가발전 손전등과 성냥 양초 (이런 재난용품을 좋아하는것도 비축하는 습성 때문인듯)
복싱줄넘기
만들던 잡지 등등
한 인간의 역사적 유물들이 계속해서 발굴됨 

밤마다 포켓몬놈들한테 마구찌르기옥수수샐러드 만들어 먹이는 에겐남이라 뭐를 못 버리나 잠시 생각함
근데 집 미관에 대한 욕심이 1도 없고 백년된 꽃무늬 이불 덮고 코 ㅈㄴ골면서 장비처럼 자는 거 보면 테토남인가 싶기도함

아무튼 몇 시간에 걸쳐 정리가 끝났고 대학생 자취방 이삿짐만큼의 쓰레기가 나옴

그 동안 Z는 매우 협조적이었지만 마지막 순간 쓰레기 더미를 잠시 바라보다
발작적으로 고양이 똥삽을 화다닥 챙기더니 어딘가에 감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호딩의 원인 중 하나는 상실감이라는 말이 떠올랐음

아무튼 이렇게 어둠의 구역들은 정화되었고 호딩방은 이제 명상실로 쓰여지고 있음
이 방 앞에 가면 요즘도 뿌듯함 종종 서서 나의 업적을 감상하곤 함

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등긁어줘 다음으로 많이 하는 말은 [ 이거 버리자 ] 와 [ 쓸 일이 생길 수도 있어 ] 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