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에요/미술

홍기하

유 진 정 2022. 7. 19. 02:40



저번주 금요일 레인보우큐브 갤러리에서 열린 홍기하 작가의 전시 오프닝에 다녀왔다.

요즘은 누가 뒤통수를 탁 치면 기~하~! (카우보이 톤으로) 라고 외칠지도 모른다.

머릿속이 홍기하와 그가 집요하게 추천한 컨텐츠들로 꽉 차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지성과 교양, 깡을 갖춘 거대한 유아 같은 그의 캐릭터는 너무 독보적이다.

홍기하씨의 이름을 처음으로 듣게 된 것은 8시 뉴스에서였다.
홍대 앞 일베 조각상의 작가로 논란을 일으키는 중이었는데 당시 나도 일베라는 커뮤니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인간들의 천태만상에 혀를 내두르고 있던 때라 흥미를 가지고 지켜본 이슈였다.
그리고 일베조각상은 훌륭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아래와 같다.




큰 미학적 욕심이 보이지 않고, 딱 봐도 부수기 좋게 생긴 재질이길래 만든 사람이 똑똑하다고 생각했다.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aka 일베조각상은 우리의 예상대로 성난 군중에 의해 파괴되었다.
관련된 비화들이 굉장히 재미있는데 나중에 기회가 생기면 밝히도록 하겠다.

아무튼 그때는 당연히 작가가 남자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언급했듯이 작품의 외관이 투박했고 무모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기하라는 이름도 한 몫했다.

그러다 최근 peer to peer 라는 전시의 참가 권유 메일을 받았고,
참가여부를 결정하기 전 명단에 적힌 작가들의 뒷조사를 하던 중 홍기하 씨의 이름을 발견하고 껴달라고 했다.
그 와중 그가 여성이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별로 안 중요한 거 같지만 중요함)


peer to peer는 첫 전시의 참가자가 각각 1인을 추천함으로써 머릿 수를 늘려가는 다단계 조직이다.
모두 순수미술 하시는 분들이길래 누가 날 추천했나 궁금해하고 있었는데 역시 기하씨였다.

2018년 독순언니와 함께 출연한 퍼피라디오를 듣고 존재를 알게 되셨다고 하는데
그때 내가 일베와 조리돌림, 위선에 대한 얘기를 좀 했던 기억이 있다. 일베가 이어준 인연이라니 엄청나게 불길하다.


금요일 전시 오프닝 날에 기하씨의 지인에게서 사건 당시 작가의 반응에 대해 들었다.

당시 그들은 아직 학생이었고 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죽여버리겠다 부터 시작해서 온갖 협박문자가 쏟아져 들어오길래 본인은 그 상황이 정말 무섭다고 생각했는데 기하의 반응이
<흐흐 웃기네> 여서 꽤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예전에 누가 일베 조각 해프닝을 보고 작가를 영악하다며 디스한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실제로 뵙고나니 영악과는 거리가 멀고 반골이라 쉬운 길 돌아서 가실 스타일이다.

실제로 위의 사건으로 인해 미술계 안에서도 꽤 많은 고초를 겪으신 듯 하다. 아직도 어떤 자리에서는 금기시되는 대화 주제라고..

첨엔 전시 리뷰를 쓰려고 했는데 인물평론이 되어버렸다.

아무튼 작가 홍기하가 궁금하신 분들은 지금 레인보우 큐브 갤러리에 방문하거나 (7월 31일까지. 월,화 휴무)
인스타를 빨로하세요. 자기 사진은 거의 없지만 조각에 대한 그의 정열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시를 다 보신 후엔 배치되어 있는 논문(?)을 꼭 가져가서 읽어보세요.
도록 대신 a4용지 다섯장에 자신의 사상을 빼곡하게 펼쳐놓았는데 아주 패기가 넘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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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더 이상 크고 무거운 조각은 탄생하지 않는가?

물론 나의 좁은 시야에서 본 '동시대'의 범위 안에서 던지는 질문이지만, 크고 무거운 조각이 만들어지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경험한 환경의 물성이 조각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최고의 효율을 향해 달리는 사회에서 크고 무거운 것의 경제적 가치는 저평가 되고 자연스레 도태된다.
그래서 돌인 척 하는 스티로폼, 나무인 척 하는 시트지, 철인 척 하는 합성수지 등이 우리를 둘러 싸게 되고,
이러한 경제적인 페이크 물성에 익숙해진 우리의 사고로 조각을 만들게 된다.
그리고 미술을 직접 마주하는 것 보 다 온라인 이미지를 통해서 감상 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물질의 내면을 탐구하는 작업은
이미지 상으로 경쟁력을 갖기 어려워 졌다. 대신 카메라의 시선을 염두해 조각의 표면에서 부릴 수 있는 마술적 효과들을
탐구해야 하는 게 우선이 되고, 이미지에 담길 수 없는 정직한 물성이나 물질 고유의 매스감, 360도의 시점 등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소홀해진다.
그런 사고가 보여지는 조각을 볼 때 나는 그 안에서 살아있는 동시대성을 발견하지만, 나는 이와 같은 흐름 속에서 등한시 되는 조각적 요소들에 주목하고 효율이 아닌 가치를 말하기 위해 크고 무거운 조각도 여전히 고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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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instagram.com/khiahong/



http://www.rainbowcube-space.co.kr/about/ 덧붙이자면 지금 전시는 공간도 신선함
평범한 벽돌 주택을 개조한 갤러리인데 곳곳에 재밌는 요소가 있음. 할머니가 혼자 사시던 집이라 변기가 아주 작다던가..

커피를 함께 팔거나 하는 것도 아닌 온전히 전시만을 위한 공간을 개인이 만들었다는 것도 흥미롭고
공간에 대한 홈페이지 설명도 문학적임. 대표님의 미술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음

그리고 나의 favorite 묘지 중 하나인 절두산 순교성지가 바로 코 앞임. 전시관람 후 여기도 가 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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