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기간 중인 담마코리아에 방문했다
지도 선생님이 곧 떠나시니 인터뷰 하고 싶은 사람은 11시까지 찾아오라는 공지가 돌길래 질문거리 없어서 그냥 돌아다님
그러다 흙먼지 뒤집어 쓰고 연장을 쥔 청년 도반 두 분이 물어볼까?물어볼까? 하며 망설이는 모습을 목격
서울에서 그룹시팅하며 좀 친해진 분들이라 다가가 뭘 물어볼까 말까 하고 있어요 했더니
자위행위를 하거나 야동을 보는 것이 실라 ( 재가자로써 지켜야 하는 다섯가지 도덕적 계율. 세번째가 부도덕한 성적 행위 하지 않기임 )를 어기는 것인지 선생님께 질문하고 싶은데 통역이 여성 분이라 말이 잘 안 나올 것 같아 망설이는 중이라고
그거 외국 위빠사나 포럼에 자주 올라오는 질문이고 야동소비는 착취구조에 일조하는 느낌이라 나는 2D만 본다고 했더니 그럼 2D는 실라를 어기지 않는 것인가, 부터 시작해 잠시 토론을 했는데
우리끼리 결론낼 수 있는 주제가 아닌 것 같아 그럼 걍 내가 선생님에게 물어보겠다 하고 담마홀로 들어갔다.
아래는 답변의 정리
- 자위행위가 실라를 어기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권장하진 않는다. 성욕은 일시적으로 해소된다 하더라도 금새 다시 생겨나는 욕망이고 자위를 반복할시 오히려 더 과도한 욕구가 생겨나게 된다.
- 만약 참을 수 없을 경우 하면 된다.
다만 하고 나서 죄책감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 죄책감으로 스스로에게 고통을 부여하는 것 역시 새로운 상카라를 만드는 일
- 성적 욕망이 발생할 때 그것을 억누르지 말고 그저 의식하고 관찰하라.
이 과정을 되풀이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욕구가 줄어드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성욕뿐 아니라 모든 욕망이 마찬가지이다. 참는 것이 아니다. 나는 첫 코스 이후 바로 이런 식으로 담배를 끊었다. (나도 이렇게 술을 끊음)
- 부처님은 (출가자가 아닌) 재가자들에게 금욕하라는 말을 하신 적이 없다.
다만 헌신할만한 안정적인 상대와 성관계를 하는 것이 좋다. 자위행위의 자극에 익숙해지다 보면 실제 연인을 만났을때 관계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음
- 실제 인간을 소비하여 만드는 야동보다는 2D가 좀 덜 부도덕한 매체일 수는 있다.
그러나 욕망을 부채질하고 자극 역치를 높인다는 점은 같으니 되도록 멀리 하는 것이 좋다
- 이 생각을 염두에 두라. 야동을 보며 자위를 하는 것은 당장의 즐거움을 주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해가 된다.
반면 우리가 매일 앉아 명상을 하는 것은 처음엔 괴롭고 귀찮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이익이 된다.
맛있게 먹은 꿀이 뱃속에서 석탄이 되고 괴롭게 먹은 석탄이 뱃속에서 꿀이 되는 것처럼
(이걸 곧이 곧대로 해석해서 네? 꿀이 소화기관에서 석탄 성분으로 변하나요??? 물어보고 스스로의 우둔함에 잠시 충격받음. 아무튼 여기서 도파민 네이션 내용이 생각났음)
- 성욕은 가장 강력한 욕망이다. 우리는 모두 부모의 성욕에 의해 존재를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윤회의 고리를 끊고 해탈을 추구하는 수행자로써 성적 욕구를 신중하게 다뤄야 할 것
https://digthehole.com/4105
안그래도 일전에 센터에서 책을 읽다가 건전한 성관계는 그럼 무엇을 뜻합니까?
라는 항목이 있길래 집중해서 읽어봤는데 < 헌신을 맹세할 만한 사랑하는 상대와 성관계를 가지는 것 > 이라는 답이 나와있었다.
읽자마자 나도 모르게 미치겠네 진짜 라는 말이 육성으로 튀어나왔는데
아니 부처님 저도 그게 제일 좋다는 건 압니다. 다만 그런 상대를 못 찾은 중생은 어쩌냐는 거죠
그런데 사실 과거를 돌이켜보았을 때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그냥 할 때 됐다 물색해서 찾은 상대와의 섹스는 일말의 혐오감을 불러일으킨 했음
서로를 물건처럼 다루게 되기 쉽다는 점에서 남성관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듯
그리고 피곤하거나 위험한 일이 발생하게 되는 경우도 존재하고 무엇보다 위생적인 관점에서 상당히 찝찝해
아래는 건전한 성관계에 대한 S.N 고엔카 선생님의 답변
질문 : 정당한 성행위와 잘못된 성행위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충동의 문제인가?
대답 : 아니다. 성은 가정생활에서 정당성을 가진다. 억지로 억압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강하게 독신을 주장하는 고행자는 긴장을 만들고 이것은 보다 많은 문제와 어려움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만약 성적 욕구가 일어날 때마다 아무하고나 성관계를 가진다면 이때 당신은 그러한 욕망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런 양극단을 피하기 위해서 법(法)은 정신적인 성숙을 이룰 수 있고 서로가 허락한 남녀의 성관계인 건전한 성적 표현, 중도의 길을 마련한다.
그리고 만약 당신의 파트너가 위빠사나 수행자라면 성적 열망이 일어날 때 마다 두 사람은 그것을 관찰할 것이다.
이것은 억압도 탐닉도 아니다. 관찰함으로써 당신은 쉽게 스스로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당신 부부는 여전히 성관계를 가질 것이다.
그러나 점차 성이 의미없는 단계로 발전한다. 이것이 진실하고 참다운 독신의 단계,(celibacy를 독신으로 번역한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순결이나 정절에 가까운 의미라고 생각) 마음속에서 성적 열망의 생각마저 일어나지 않는 단계이다.
이런 독신은 성적 만족을 넘어 큰 기쁨을 준다. 항상 만족스럽고 조화로운 느낌으로 살아간다. 인간은 이런 참된 행복을 경험해야만 한다.
질문 : 서구에서는 많은 사람이 서로 동의한 성인들의 성관계는 허용된다고 생각한다.
대답 : 이런 견해는 법(法)과는 거리가 멀다. 이 사람 저 사람과 성관계를 가지는 사람은 그의 욕망과 고통을 증가시킨다. 당신은 어떤 한 사람을 선택하거나 아니면 독신생활을 해야 한다.
농담이고 노력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