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애들은 번개라는 말을 알까? 그런게 있다..
인디지오님 블로그에 럭키데이 인 파리 영화번개 글이 있어 참가신청을 했다.
추문으로 나락간 우디앨런의 복귀작이라 뭔소리 할지 궁금하기도 하고
가는 길에 버스를 잘못 타서 늦었다.
영상자료원에서 했던 우디앨런 영화제 늦게 들어간 기억이 났다.
옆에 앉은 남자가 욕을 퍼부었던 것도 기억나서 설마 이번에도 반복되는건 아니겠지
하면서 대충 빈자리 찾아 들어갔는데 앉자마자 뒤에서 누가 톡톡 치길래
끄악 하면서 고개를 돌리자 지장보살같은 두상이.. 노정태 선생님이었다
앞부분은 다 놓쳤고 웬 기차 디오라마 장면이 짧게 지나간 뒤
주인공 파니가 본격 불륜 시작하는 장면부터 봤는데 다작한 노인감독의 깡다구가 느껴지는 영화다.
아 몰러~ 하면서 사소한건 대범하게 쌩까버리니까 영화가 아주 시원시원함
계속 흘러나오는 재즈선율은 뻔뻔하고 재치있음
예전엔 우디앨런이 소심한 캐릭터인 줄 알았는데
영화보고 이새끼 다 컨셉이구나를 깨달은 기억이 있다 ㅈㄴ테토남.. 그래서 난리 났을 때도 별로 안 놀람
그와 별개로 추행사실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모르겠다.
입양아로 포켓몰 놀이하는 미아패로우도 이상하고
그 유출된 통화내용 솔직히 너무 연기/트랩 같아서 이 사안에 대한 판단은 보류
그냥 이 가족을 보면 대를 잇는 스키마라는 문장만 떠오름
미아패로도 우디앨런도 결핍이 엄청난 인간들이고
둘 다 자식을 도구로 삼은 착쥐척 부모의 전형이라고 느껴짐
암튼 영화를 다 보고 은행나뭇잎이 쫙 깔린 이대거리를 지나 호프집에 들어갔다.
자기소개하고 이런저런 이야기 했다. 영화 번개라는 컨셉이 괜찮더라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함께 겪은 경험을 공유함 -> 양질의 대화
그리고 각자 다 너무 다른 부분을 캐치하셨길래 그게 아주 흥미로웠음.
성함은 듣자마자 그 자리에서 까먹음 아래로 스포 있으니 영화 보실 분은 읽지 마세요
노정태 선생님: 첫 장면에서 여주인공 ex이랑 여주가 스쳐지나가는데
ex가 화면 밖으로 나갔다가 시간차를 두고 다시 앵글 안으로 걸어 들어온다.
영화의 주제인 우연? 운을 그런 식으로 연출한듯
초기 디즈니 백설공주 닮은 분 : 여주인공이 수천만원짜리 에르메스백 들고 결혼 반지 까르띠에고
그런 식으로 남편에게서 전달된 부를 누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다른 부자들 보면서 막 기회주의자다 천박하다 욕하는 장면에서 위선적인 캐릭터의 특징이 잘 묘사되었다
인디지오님 : 여주인공 엄마의 너는 왜 글쓰는 루저들만 만나니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인수님: 저는 뭐 영화 별 관심도 없었구요 그냥 오랜만에 인디지오님 만나러 나왔는데..
지금 이 상황도 그렇고 인생이란게 정말 한 치 앞을 알 수 없구나, 변수는 예상할 수 없구나 그런 생각했습니다.
부장님: 마지막에 남편 총 맞을 때 숲에서 나오는 남자들이 제복 같은 것을 입고 있어서 무슨 군이나 경찰인줄 알았다. 그리고 잘 보면 한 명이 팔에 빨간 완장을 차고 있는데 일종의 상징이 아닌가
(여기서 여러 사람이 동조했고 민중? 정의? PC세력 같은 거 뜻하는 거 아니겠냐 하는 의견들이 나옴)
나: 불륜남 시인 하는 말 다 야부린데 그를 죽여버리는 씬조차 생략하고
다음 장면이 바로 시체 들어있는 가방인 하드보일드 연출이 웃음벨
no sugar님: 디오라마 기차 씬의 냉소가 기억에 남는다. 나이가 90인 양반이 그렇게까지 해야됐을까..
이 캐치에서 기겁을 한게 진짜 상상도 못했음
걍 사고가 기계적인 남편 캐릭터를 묘사하는 장치라고 생각했는데
딜런패로가 우디알랜 고발할 때 자기 아기 때 앨런이 철도 디오라마 앞에 세워놓고 추행했다는 말을 했잖음
그니까 이 장면은 우디앨런이 미아패로에게 보내는 뻑큐임
이 영화를 미아패로와 식구들이 본다면 얼마나 빡쳐할지..
나이가 90인 양반이 이렇게까지 해야됐을까 <- 넘나 상식적인 갓반인의 사고라 이것도 재밌었음
라스폰트리에 복귀작 메시지가 이거였잖음
욕구가 세간의 상식과 윤리 위에 자리한다는 점에서 예술가는 살인자다 (+ 나좀 봐줘잉)
이런 남자들이 범죄 대신 창작의 길에 들어섰다는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와 별개로 우디앨런의 냉소에 대해서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백년 가까이 냉소의 기술을 갈고 닦는 중인 냉소의 마에스트로 곁에서 버티는 순이도 대단하다.
어릴때 너무 개고생하면 사람이 해탈해버리는 경우가 있던데 그런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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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영화 주제가 뻑큐미아패로 Luck 이었고, 요즘 자주 떠올리는 키워드라 그 점에서도 즐거웠다.
나는 스스로를 운에 내맡기는 상황을 좋아한다.
여행 일정은 대충 짜고 게임도 퀘스트 순서 쌩까고 그냥 아무대나 뛰어가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그리고 이렇게 살면 항상 운이 좋다고 착각하게 되어서 개꿀인 거 같다.
이날 번개도 충동적으로 별 기대없이 나갔는데 엄청 즐거웠다.
욕먹는 줄 알고 고개를 돌린 곳엔 웃는 얼굴이 있었고 십년만에 만난 인수님은 반갑다며 뭉크의 절규 피규어를 주셨다.
게다가 비에 젖은 거리가 너무 아름다웠다.

 진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