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더와 곤더 1
아래는 내가 Z의 집을 처음으로 방문한 뒤 기록한 메모이다 연식이 꽤 된 빌라 십년째고양이 제단 호더같은 미친 방 하나. 책 땜에 바닥 내려앉을 거 같음깨끗한 주방 작업방은 안락침실에 두께
digthehole.com
이걸 기록한지 벌써 넉달이 지났군
호더는 저 글의 썸네일(퍼온 거)에 이의를 제기했다
블로그 들어오는 사람들이 자기 집이 저런 줄 알 것 아니냐는 것이었으나 응 저랬어
다행히 모든 방이 저렇진 않고 방 세 개 중 하나가 저 꼬라지
딴 방들도 물건은 많지만 정리가 양호한 편
특히 십자가와 포인세티아 화분이 놓여져 있는 작업방의 정돈된 책상에선 Z의 성실함을 느낄 수 있음
그리고 몇 걸음 걸어 호딩방에 도달하면 그의 실성함을 느낄 수 있음
그곳엔 2천여권에 달하는 장서들이 온갖 잡동사니와 뒤얽혀 음기를 뿜어내고 있었고
이 저주받은 공간에서 생성되는 미세먼지와 책곰팡이 포자에 기관지가 작살날 거 같길래 Z의 의중을 좀 떠봄
일단 저번에 안 물어보고 버린 곡식에는 별 말을 안 하길래 아주 찐은 아니구나, 희망을 엿봄
진성호더는 이런 합리적 배출에도 지룰함
암튼 저 방을 치우자고 하니 나중에.. 나중에.. 를 외치길래
영업맨의 발부터 집어넣기 기법을 사용해 그럼 거실에 있는 스탠딩 데스크 아래쪽이라도 치우자고 함
이 스탠딩 데스크도 이미 오래 전 본연의 기능을 잃었음 책상 위엔 운동물품 아래 쪽엔 안쓰는 족욕기 온열방석(돌아가신 고양이용)등등 잡동사니가 빼곡히 들어찬 상태
족욕기는 당근에 내놓으라 하고 온열방석은 요거트 가끔 만든다길래 킵함
여기는 뭐 면적이 적으니까 금방 치움. 치우고 나니까 검은색 먼지가 잔뜩 나옴
Z는 어떤 신념에 의해 물걸레질을 하지 않는듯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쓸데없이 복잡한 구조의 통판st 물걸레 키트가 호딩방에 떡하니 놓여져 있다는 점이 너무 킹받음
여러분 명심하세요 물건은 단순해야 손이 가는 겁니다
아무튼 책상 아래를 비웠고 거기는 내 좌석으로 쓰기로 함
그리고 며칠 뒤 기세를 몰아 호딩방도 처리 들어감
자꾸 호더라고 부르니 Z가 그럼 너는 곤도 마리에 같은 짓을 하니 곤더다 하길래 포스팅 제목 호더와 곤더 됨
아무튼 호딩방을 같이 치우기 시작하니
구여친이 준 루믹스 빈티지 디카 (당시엔 빈티지가 아니었지만)
이십대때 쓰던 삭은 안경테
고양이 말년에 사놨지만 쓰이지 못한 장난감 (For sale: cat toy. never used)
고양이 간병 중 사용한 주사기들
고양이 화장실
고양이 화장실 모래
고양이 털
삭아서 가루가 되는 정체불명의 플라스틱 물체들
코로나시절 방역물품
자가발전 손전등과 양초 등 (이런 재난용품을 좋아하는것도 비축하는 습성 때문인듯)
복싱줄넘기
만들던 잡지 등등
한 인간의 역사적 유물들이 계속해서 발굴됨
밤마다 포켓몬놈들한테 마구찌르기옥수수샐러드같은 거 만들어 먹이는 에겐남이라 뭐를 못 버리나 잠시 생각함
근데 집 미관에 대한 욕심이 1도 없는 거 보면 테토남인가 싶기도
아무튼 몇 시간에 걸쳐 정리가 끝났고 대학생 자취방 이삿짐 분량의 쓰레기가 나옴
그 동안 Z는 매우 협조적이었지만 마지막 순간 쓰레기 더미를 잠시 바라보더니
발작적으로 고양이 똥삽을 화다닥 챙겨 어딘가에 감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호딩의 원인 중 하나는 상실감이라는 말이 떠오름
아무튼 이렇게 어둠의 구역들은 정화되었고 호딩방은 이제 명상실로 쓰여지고 있음
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등긁어줘 다음으로 많이 하는 말은 [ 이거 버리자 ] 와 [ 쓸 일이 생길 수도 있어 ] 임..

 진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