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진희님이 번역해주신거 퍼옴
이건 명상러들 다 읽어야돼 왜냐면 너무 빠지기 쉬운 굴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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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명상하기 시작하거나 어떤 종류의 영적 규율을 따르기 시작하게 되면, 종종 그 사람은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든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진짜 자기 자신이 누구인가에 반하는 미세한 공격의 한 종류입니다.
이건 마치 "내가 조깅을 하면, 나는 훨씬 더 나은 사람이 될텐데." "내가 더 좋은 집을 구한다면,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될텐데." "내가 명상하고 진정하게 되면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될텐데." 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혹은 다른 사람들의 결점을 찾게 되는 시나리오도 가능하지요.
그는 "내 남편만 아니라면, 내 결혼은 완벽할텐데." "내 상사와 내가 잘 지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내 직업은 완전히 훌륭할텐데." 그리고 "내 마음만 아니라면, 내 명상은 훌륭할텐데" 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 자신을 향한 자애(maitri, 마이뜨리)는 무언가를 없애버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이뜨리는 우리가 이 모든 세월을 겪고 나서도 여전히 미칠 수 있음을 의미하지요. 우리는 여전히 소심하거나 질투하고 무가치하다는 감정으로 가득찰 수도 있습니다.
요점은 우리 스스로를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입니다.
명상 수행은 우리 스스로를 던져버리고 더 나은 누군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미 누구인지와 친해지는 것입니다.
(전문) https://cafe.naver.com/vipassanayouth
아니 얶떢게! 자기에게 저렇게까지 관심이 많을수가 있냐고!! 미친 거 아님??????
이라는 내적 외침이 항상 있어왔는데 자신에게 '만' 관심이 있는게 문제지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는 건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최근 깨달음
작년 상담 때 상담사님이 그래서 그때 유진님은 어떤 감정을 느끼셨나요? 라고 할 때마다 매우 당황했고
모르겠는데요 라는 대답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는데 왜냐하면 분노 외적인 감정은 죄다 모호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그래서 처음으로 알았음. 내가 나와 남의 감정에 둔감하고 그걸 무시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는 걸
에니어그램에선 4-60년대 격변기를 보낸 한국 남성에게 나타나는 일면이라는데 그래서 아저씨들이랑 동족혐오로 졸라 싸웠나 싶기도 함 (사실 성적접근과 훈계를 제외하면 편한 것도 아저씨들임. 감정적으로 요구하는게 적고 표현 역시 적기 때문에.. 이거 반대로 하는 사람들이랑 있으면 미쳐버릴 거 같음)
그렇다고 내가 감정이 없는 사람이라기에는 영화나 책 보면서 너무 쳐움
그래서 알게 되었다. 감정적 둔감성과 만성적 분노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발달한 나름 소중한 방어기제라는 것을!
물론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해서 화가 안 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나의 의도에 대한 파악이 생김과 동시에 상대방의 의도도 디테일하게 파악되면서 더 빡치게 되는 면도 있음
다만 여기에 대해 자각하고 스스로에게 자비심을 가지게 된 후 부터 분노가 살의로까지 번지지는 않게 되었기 때문에 삶이 쾌적해진 면이 있다. 살의 너무 큰 에너지를 요하는 감정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