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시 29

목소리

신호를 기다리는데 몬가 잠수부?같은 희한한 겨울옷차림에 얼굴이 검게 탄 할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고물을 줍는 사람인거 같았는데 1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동료에게 00엄마!!! 그거 줏어!! 줏으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있었다. 목소리가 정말 컸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다 할머니를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동네에 목소리 큰 사람들이 많이 산다. 어제 새벽엔 술에 만땅취한 총각이 김치발라드를 목이 터져라 불러재꼈는데 2절이 시작되자 맞은편 오피스텔에 사는 여성이 미친색끼야 고만해!!!!!!!!!!를 기차의 기적과도 같은 데시벨로 내질렀고 거기에 탄력을 받은 옆동 남자 역시 씨발색끼야 꺼지라고!! 를 합창하였다. 만취남은 블록을 옮겨서 노래를 마저 부른 뒤 퇴장하였다. 오랜만에 홍대 놀이터에 앉..

글/시 2017.06.28

깜순이

1994년 어느 날 저녁퇴근한 아버지가 가방에서 시커먼 물체를 꺼내더니 거실 바닥에 툭 내려놓았다.시커먼 물체는 곧 꾸물꾸물 움직이기 시작했고 엄마는 공포의 비명을, 나는 기쁨의 환성을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털이 곱슬곱슬한 검둥강아지였던 것이다.엄마는 도대체 이걸 어디서 가져온 것이냐 따져 물었고, 아빠는 옆의 카센터에 들렸다가 기름때를 뒤집어쓰고 있는 것이 안 되어보여 데리고 왔다는 설명을 시작했다. 엄마의 걱정이고 뭐고 나는 너무나 기뻤다. 외동인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강아지를 기르고 싶어 했고, 피아노가 생기자 나에게 강아지를 사달라는 곡을 만들어 치기까지 했는데도 부모님은 그때껏 건전지를 넣으면 깽깽짖는 강아지 인형만을 사주었던 것이다.아무튼 엄마는 강아지가 싫다고 했다. 어릴 때 개에게..

글/시 2016.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