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어느날 원효대교를 자전거로 건너다가 내가 가진 시간이 한정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 전에도 해본 적이 없는 생각은 아니지만 이날 갑자기 그 사실이 엄청 충격적으로 다가와서 그 순간 내려다본 바닥의 색깔까지 기억이 난다.
아 무의미한 일에 시간을 쓰면 중요한 일에 써야할 시간이 그만큼 줄어드는구나,
인연을 신중하게 만들고 시간을 신중하게 써야겠다 싶었다.
그렇게 다짐을 하고서도 꽤 많은 시간을 낭비했는데 요새 또 이 생각이 자주 난다.
이틀 전 명상센터에 가서 오랜만에 접수봉사를 도왔다.
남들보다 일찍 오신 세련된 노인의 신청서를 받아들고 빈칸이 있나 체크를 하는데, 또박또박 적힌 문장 한 줄이 눈에 들어왔다.
' 일상에서 죽음을 느끼게 되어서 왔습니다. '
도반 S님이 그룹시팅에 오셔서 한 말이 떠올랐다.
이십대인 K님을 가르키면서 ' 자넨 아직 시간이 많잖아, 나는 물러설 길이 없어. ' 라고 하셨는데
말이 끝나자마자 옆에 있던 J님이 ' 아유 선생님 가는데 순서없어요~ ' 라며 츳코미를 넣는 바람에 모두 빵 터졌다.
하지만 그 말은 너무나 진실이라고 생각했다.
생일이 다가오면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지난번 생일엔 사전연명의료 거부신청을 했다.
뇌사상태 등에서 임종을 미루기 위해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동의서이다.
보험공단에 가서 등록을 하겠다고 하니 직원 아저씨가 젊은 분들은 웬만하면 안오시는데 잘 오셨어요, 하며 반색을 하던 것이 기억난다.
카뮈의 에세이에 옛날 수도승들이 탁자에 해골을 하나씩 놓고 글을 썼다는 대목이 나온다.
죽음을 상기하면 뭘 써야 할지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나도 해골이 하나 있어야겠다 싶었다.
무덤을 파해칠 순 없는 노릇이라 쿠팡으로 레진해골을 하나 주문했다.
그냥저냥한건 안될 거 같아서 아주 사실적이고 잘 생긴 놈으로 골랐고 다가올 생일의 셀프선물이라고 생각하며 결제버튼을 눌렀다.
그런 후 운동을 가며 삶의 남은 시간을 써도 아깝지 않은 것들의 리스트를 머릿 속으로 정리해보았다
- 명상
- 원고
- 쓸데있는 정보의 공유
- 명상과 관련된 봉사
- 자연에서 보내는 시간
- 운동과 식사준비 노동 등 삶을 스스로 유지하기 위한 활동
- 청소 (위의 활동과 겹쳐지나 좋아함으로 따로 정리)
- 뜻이 통하거나 새로운 시각을 가진 사람과의 대화
여행지에 가면 하루를 굉장히 알뜰하게 쓰게 되는데 인생에도 여행처럼 끝이 있다는 사실을 자꾸 까먹는다.
그렇다고 초조해 해서는 안 되고, 그러면 오히려 현재에 집중할 수 없게 되니까.
평정심을 가지고 천천히 매듭을 풀어나가다 기쁜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