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 미용실이 있다. 가격이 말이 안되게 싸다. 가깝지만 너무 싸니까 무서워서 한번도 안 가봤다.
그러다 올 여름 혼자 머리를 자르다 뒷머리는 도움이 필요할 거 같아 용기내어 들어가 봤다.
외관처럼 좁고 남루한 미용실이었다. 미용사는 눈썹 문신을 진하게 한 4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진한 눈썹에 비해 눈이 슬펐고 말투가 대단히 겸손한 분이었다. 아유 뭘요 암요 이런 대사가 어울리는
아무튼 머리를 어떻게 만들어 놓으려나 기대반 걱정반으로 앉아있었는데 예상과는 달리 매우 말끔멀쩡하게 잘 잘라주셨다. 오며가며 보니 항상 할머니들로 붐비는 곳이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까지 가격을 싸게 받는가 의문이 다시 고개를 든다. 자기 건물이라 그런가보다, 하고 폭주하는 생각을 마무리 지었다. 어지러운 작업환경 저자세의 성실한 미용사 아줌마. 아마 놈팽이 남편이나 남친이 존재하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엊그제 이번엔 파마를 하러 들어가 봤다.
염색 중인 할머니 손님이 계셨고 허리가 굽은 다른 할머니가 들락날락했다. 주인집 할머니라고 한다. 그렇다는건 월세를 낸다는 소리. 그럼 이 가격은 더더욱 말이 안되는데?
할머니 손님과 미용사 아줌마의 대화를 엿들으니 세 내면 남는게 없어서 사는게 재미가 없으시다고 한다. 그래도 주인 할머니가 좋으신 분이라고.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주인 할머니는 열무김치 담궜는데 좀 갖다줄까? 하더니 종종 걸음으로 사라졌다가 김치를 한 통 들고왔다. 아줌마는 장갑을 벗고 짭짭 김치를 맛봤다. 찌개 말고 그냥 먹어야 겠네요. 맛있다..
그 다음에 들어온 할머니에겐 아줌마가 부탁을 하나 했다. 언니, 돈 줄테니까 개소주 달이는 탕약집 가서 약쑥 오천원 어치만 사다줘. 방광염이 재발해서 너무 힘들다, 저 언니가 훈증을 하면 좋대, 약이고 뭐고 다 써봤는데 듣지를 않아..
이쯤에서 사는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손님들이 사라지고 둘이 남게 되자 아주머니의 좀 더 내밀한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십년 넘게 만나고 있는 남자친구와 너무 헤어지고 싶다는 것이었다.
자기는 사람이 기가 약한데 남자친구는 말을 잘하고 똑똑하며 다정하다고
그럼 왜 헤어지고 싶으신데요 하니 식사를 하던 뭘 하던 돈을 한번을 안낸다는 것이었다. 나이도 자기보다 열 몇살이나 많다고
아이고 남녀사이에 돈 이야기 나오면 끝인건데 하자 그렇죠 열이면 열 다 헤어지라고 그래요.. 하시길래
위안이 되니까 만나시는 거에요? 다시 물어봤다. 그렇다고 한다. 사주는 밥 먹는 거 보면 이쁠 때도 불쌍해 보일때도 있다고
오우 불쌍해보이면 큰일인데 근데 또 위안이 되시면 그냥 적당히 만나면 되는거 아닌가요? 묻자 문제는 자꾸 돈을 가져다 주게 된다고... 오만원 십만원씩 주다 지난번 소상공인 지원금 300만원도 가져다 줘버렸다고 한다.
이거는 진짜로 문제가 있다. 300만원이면 이 귀신나올 것 같은 미용실의 인테리어도 어느정도 개선할 수 있고 말이 안 되는 가격을 조금 더 올려받아 아줌마는 휴식시간을 더 가질 수 있고 방광염으로 고통을 덜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 결국 중독의 문제다.
삶이 너무 외롭고 고통스럽기 때문에 조금만 따듯한 말을 해줘도 자신을 착취하는 상대에게 달려가 버리게 되는 것이다.
헤어지세요 딱 잘라 말하기도 그런게 이별과정 중 해를 입을 수 도 있고 본인이 바뀌지 않는한 더 나쁜 상대를 만나게 될 가능성도 존재하기 때문에..
아무튼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했다.
본인이 더 나은 삶을 살겠다 굳게 마음을 먹는 수 밖에 없는데 무의식 차원의 패턴이라는게 쉽게 바뀌는게 아니니까
그렇다고 내가 해결해 줄 수는 없는 문제라 명상원의 존재를 알려드리고 시에서 무료로 지원하는 상담 프로그램 책자를 가져다 드리고 왔다.
여자란 무엇인가 성이란 정말로 번뇌의 근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파마는 잘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