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에요

쓰나미는 신의분노 수마트라 파당. 인도네시아 2012/11

유 진 정 2013. 9. 3. 23:21

아름답고 음식이 맛있던 말레이시아를 떠나 인도네시아에 도착하였다. 

우리는 말라카에서 두머이로 배를 타고 입국했는데 배안에서 매튜가 고이 숨겨두었던 미화 삼백달러가 실종되었다. 

게다가 입국심사소에서는 어찌된 일인지 우리둘과 미국에서 온 흑인여자 세명을 붙잡아 놓고 보내주지 않았다.

직원들이 우리를 끌고 간곳은 커튼이 쳐져 있는 조사실이였음 그러고 보면 난 입국심사소와 별로 인연이 좋지 못하군

 

일본 - 불법체류시도하는 윤락녀로 간주됨. 센다이 공항에서는 한국어 통역이라는 직원을 하나 붙여주고 대화를 시도하였으나  그는 접속사밖에는 알아들을 수 없는 한국어를 구사하였고 나는 그때 일본어도, 영어도 못하던 시절이라 결국 네시간 동안 조사실에 갇혀있다가 풀려남  

 

호주 - 마약탐지견이 내 앞에서 떠나지 않아 조사실로 끌려감 이유는 기내에서 받은 피자빵이였지만 나는 반정부적 메시지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전체적으로 노숙자스러운 행색을 하고 있었음으로 짐이 철저히 수색됨. 하지만 줄 안서고 남들 보다 빨리 나올수 있어서 좋았음

 

이런 경험들 이후로 공항에 갈때는 최대한 인간다운 복색을 갖추려고 노력하였으나 이번엔 항구라 방심했다.

게다가 다크서틀에 비쩍마른 매튜는 내눈으로 보아도 정키같이 생겨서 심사소 직원의 의심을 산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였음 

 

그리하여 나는 배낭을 열고 나의 만물주머니와 구급약통안 모든 잡동사니와 의약품에 대한 설명을 하나하나 해야 했는데 직원이 콘돔을 보더니 갑자기 너무너무 좋아하기 시작함 쟤랑 쓸거야? 하면서

왠 코털나온 아저씨 직원은 뛰쳐들어와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달아나고 

매튜는 커튼이 쳐져있는 곳으로 들어가 옷도 벗어야 했다고 별의 별곳에 손이 다 닫았다고 기분 더러워 했음

서로 시벌시벌거리며 밖으로 나오니 이번엔 택시기사들의 의도적인 신체접촉이 시작됨

인도네시아의 첫인상은 한마디로 좆구렸음 외국여자는 이곳에서 인격체가 아닌 걍 피스오브 미트이구만 하는 생각이 들었음 

 

 

나중에 위키트래블과 동남아 러프가이드북에서 찾은 정보에 의하면 두머이 항구는 보더중에 가장 어그레시브한 곳이며 일전에 대규모 마약 운반이 적발되기도 한 곳이기도 하다고. 

또한 서양인과 여행하는 아시아 여성은 종종 매춘부로 취급받는다고 함ㅋㅋㅋ그랬꾼 그랬어

 

비자 발급 비용은 달러나 링겟으로 내면 인도네시아 화폐로 내는것보다 꽤 비쌌던거 같다. 고로 입국 전 환전을 미리 좀 해서 가는게 좋음 

 

그리고 바꾼 인도네시아 돈은 있는 동안 다 써버리거나 아님 인도네시아 안에서 다른나라 돈으로 재환전해 오는것을 추천. 나라 밖으로 나오는 순간 똥값되는 화폐임. 방콕에서 바꿨더니 원래 가치의 반밖에 안되는 돈을 주길래 내 눈을 의심했다.

 

또한 인도네시아화폐 루피아의 상태는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조악했다. 

버스에서 받은 거스름돈은 구겨지고 찢어지고 번지고.. 

 

보더직원과 돈의 상태는 나에게 앞으로 내가 부딪히게 될 모든 상황을 한큐에 설명해주는 듯 했음 

  

  

 

 

배안에서 나눠주던 간식 

 

 

 

 

 

수상한 표지판

 

 

 

 

택시 안. 천장에 곽티슈를 부착해 놓았다  

 

 

 

 

 

 우리는 줄리와 카밀을 만나기 위해 파당이라는 지역으로 이동해야 했고 거기까지 버스를 이용해 보기로 하였다.

 

버스티켓을 끊기 전에 우리는 말다툼을 시작했고 난 점점 얘가 화를 내는 이유들이 너무나 광적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며 닥쳐오는 무력감에 눈물을 찔끔 대기시작했는데 그때 갑자기 주민들이 몰려와 우리에게 앞다투어 하이 하와유를 외치기 시작했다.

 

과일파는 아저씨는 멜론안살래냐고 물어보고 끽해야 중딩으로 보이는 소년은 한대 태우겠나며 자기담배를 권함  

그래서 울다말고 멜론사서 먹으며 사람들이랑 노가리까고 놀았음  

 

이 동네는 항구가 가까움에도 의외로 외국인이 전혀 보이지 않았는데 우리가 물어물어온 버스 정류장은 아무래도 동네사람들만 이용하는 곳인듯 싶었다. 

 

도착한 버스엔 냉방장치 따위는 없었고 좌석은 덜컹덜컹 지붕위에는 짐들이 수북히

버마나 캄보디아에서도 이런 컨디션의 버스는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름 신선하게 다가왔다.

두머이에서 파당까지는 200km정도의 거리였는데 이 버스는 그것을 무려 열시간만에 주파하는 놀라움을 보여주었다

 

도착한 파당역시 관광지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고 숙소찾기가 상당히 힘들었다.

알고보니 04년에 닥친 쓰나미 이후로 재건중인 동네라고.. 

 

이 동네의 교통수단은 개조된 작은 봉고 인데 외국인에게는 무조건 열배정도에 달하는 금액을 요구한다. 숙소를 찾던 우리가 봉고에 타자 어떤 아주머니는 니네 돈 너무 많이 낸다며 이만큼 에 해당하는 돈만 내면 된다고 화폐를 보여주었음.  

 

후불이였던지라 내릴때 거기에 대해 따지니 기사가 눈을 부라리며 성을 냈다. 

주위에 동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하고 그냥 주고 마는게 신상에 이로울것 같아  닥치고 돈냈음 

가이드 북에 따르면 이쪽은 좀 이런게 있다고 함. 푸켓타운 오토바이 기사들처럼 갱스터화가 진행중인가봄

 

짐을 풀고 나오니 정말 말그대로 동물원 원숭이 신세가 되었는데 평소라면 이런 주목을 즐기는 나이지만 다리와 가슴팍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로컬남성들의 시선은 정말 반갑지 않았다!!!!!!!!!!!!!! 

무슬림 동네라고 해서 나시티도 안입고 다녔는데 어디까지 싸매고 다니라는거야 정말. 이날씨에 발목까지 꽁꽁감싼 무슬림 여인네들을 보면 내속에선 열불이 치민다.

 

수마트라( 인도네시아는 크게 수마트라, 자바, 발리로 지역이 나뉜다 )에 머무는 동안 내가 처음으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누렸던 날은 비가 오는 날이였다. 판쵸우의로 온몸을 감싸고 나니 그때서야 사람 대접을 받는 느낌

근데 그것이 어찌나 반갑던지.. 매튜에게 이 이야기를 하자 바로 그런식으로 애스홀들이 여자를 지배하는 것이라며 계속 반항을 하라고 말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으니 쓰나미 이후로 동네의 분위기가 극단적으로 보수적이 되었다고 한다. 

종교경찰들이 돌아다니며 연애하는 커플들이나 옷차림이 정숙하지 않은 여자들 잡아 가두는 일이 일상화 되었다고 함.

이유는 그런 행동들이 신의 분노를사 다시 쓰나미가 닥쳐오게 만들기때문이라고.. 그러고보니 예전에 무슨 한국목사는 동남아에 쓰나미 많이 일어나는 이유가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라고 한적 있지 않나?

믿어도 지랄 안믿어도 지랄이니 수마트라 사람들은 정신이 없을듯 쓰나미가 무슨 소고기다시다여 아주 요모조모 잘들써먹네

 

 

무튼 이동네 마음에 안들어서 사진 거의 안찍었다. 

몇가지 좋은 기억은 매튜가 옆머리 밀어달라고 해서 동네 이발소에 바리깡 빌리러 갔는데  아줌마가 우리가 제시한 가격에서 디스카운트를 해준거랑 숙소에 보안요원으로 일하는 제복입은 아저씨가 저녁때 슈퍼간다고 하니 위험하다며 호위를 해준것, 노점에서 파는 치킨이 무지무지하게 맛있었다는 거랑 그 치킨파는 아주머니 아저씨가 부위 어느것 줄까하면서 본인들의 가슴과 다리를 짚어 대던것이 마치 마오리 댄스처럼 보였다는것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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