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세계에요

정병과 알아차림

유 진 정 2023. 6. 16. 15:40

 
며칠 전 횡단보도에서 신호대기 하는 중 있었던 일
뒤통수 방향에서 엄마가 아기에게 아이 무서워 빨간불~ 멈춰요~ 라는 말을 하는 것이 들려옴
순간 머릿속에 장애.라는 단어가 떠올랐고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봤는데
아이 엄마가 자기보다 키가 큰, 십대 중후반으로 추정되는 소년의 손을 잡고 걸어오고 있었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대는 소년은 한눈에 보아도 꽤 심한 발달장애가 있었음
 
첫번째 담마코리아 10일 코스에 갔을 때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음 
방을 배정받고 짐을 풀러 여자 숙소에 들어갔는데 단발머리 여자가 짐을 가슴에 안고 복도에 서 있는 것을 봄
정확한 이유는 설명할 수 없지만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미친여자.라는 단어가 떠올랐고 그를 피해서 돌아갔는데
저녁식사를 하는 내내 그는 너무나 멀쩡한 영어로 다른 외국인들과 화기애애하게 수다를 떨고 있었음
하지만 말투가 약간 과장되어 있었고 나는 이 여자가 나에게 말을 안 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음

그런데 어쩐지 그가 자꾸 나를 의식하고 말 걸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음
게다가 하필이면 초반에 내 앞 자리 한 명이 탈락해 코스 내내 그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명상을 하게 됨

이 여자가 미쳤다는 확신은 날이 갈수록 강해짐. 왜냐면 명상 내도록 코를 훌쩍였고 단 한 순간도 몸의 떨림을 멈추지 못했기 때문임  

당시 지도 선생님은 중년의 미국여성이셨음
어느 날 저녁 일과가 끝나고 질문을 하러 앞으로 나갔는데 내가 선생님께 질문을 던지자 마자 숙소로 돌아가지 않고 기다리던 그 여자가 꿱 소리를 질렀음
뭐 어쩌구저쩌구 저쩌구어쩌구 궁극의 엑스터시! 라고 외쳤던 것으로 기억
아무튼 그렇게 10일이 지났고 침묵이 해제되던 마지막 날 다른 여자분들과 정원에서 수다를 떨다 여자 얘기를 꺼냄
심각한 정신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입소하지 못하는 것 아니었냐, 근데 한 분이 좀 상태가 안 좋던데. 라고 이야기했던 것으로 기억
그런데 놀랍게도 거기 서 있던 십여명 중 아무도 동조를 하지 않았음
그래서 그 줄무늬 옷 입은 아시아권 외국인이오. 라고 특징을 짚어 설명했는데 다들 그 사람이 이상했다고요? 모르겠는데?? 라는 반응
나는 식스센스 아역처럼 당신들 눈에는 저게 보이지 않는다는 거요? 류의 답답함을 느낌
물론 이런 류의 답답함은 평생에 걸쳐 느껴왔지만 10일내내 금언하고 민감성을 개발했는데도 안보인다고요? 라는 생각을 했던 거 같음

암튼 그러다 다음날 남자쪽 외국인 봉사자가 수다에 합류함
그 여자 이야기가 나오자 그가 아 그 열여덟살? 너 질문할 때 소리 질렀던? 이라는 말을 했고
그러자 다른 분이 열여덟? 나한텐 서른이라고 했는데? 로 시작하여 그가 자신의 개인정보를 모두 다르게 설정해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녔다는 것이 밝혀짐

외국인 봉사자의 말에 따르면 미성년자를 받아도 되는가에 대해 선생님 + 봉사자들끼리 논의를 거치기도 했다고 (원칙적으로 미성년자는 받지 않음. 청소년 코스가 따로 존재)
그래서 결국 그 여자의 정체는 아무도 모름. 국적도 나이도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도
 
아무튼 나는 인간의 불건강에 민감한 편이고 특히 정신적 불건강에 민감함
물론 완전 미친 사람이야 그걸 못 알아보는게 더 어려운 일이지만 정병진단 안 받고 일코 잘하고 다니는 사람들 중에도 성격장애는 정말정말 많음

이 민감함의 장점은 잘못된 기대를 설정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 때문에 놀라거나 실망하는 경우가 적다는 것이고 (건강하던 사람이 불건강해지는 경우도 많지만 이런 경우 징조를 보여주기 때문에 별로 안 놀라움. 속상한 마음은 듬)
단점은 알아차림의 반복이 혐오의 버릇을 더욱 강화시킴 (미치지 않기위해 알아차리되 반응하지 않는다가 핵심인 위빠사나 명상을 함)

게다가 어째서인지 이런 특질이 그들을 나에게로 오히려 이끄는 경향이 있는 거 같음. 마치 불을 보고 다가오는 부나방처럼
내가 잘못된 신호를 보내는 경우도 많다고 생각하는데 저 여자의 경우 한 마디도 안 섞었고 시선자체를 회피했는데도 접근하는 거 보면 걍 그들에게 먹히는 어떤 바이브가 존재하는듯? 그렇지만 전 당신들을 도와줄 수 없으니 병원에 가고 명상을 하세요
 
근데 사실은 나도 미친사람들이 좋음
미쳤다고 다 끌리는 것은 아니고 악의가 적고 창의적일수록 흥미를 느낌 
저 악의의 유무가 진짜 중요하다고 생각..

불쌍한 점은 악의가 적을수록 공격의 방향이 외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향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거 같음
근데 그러다 병이 심화되고 나르시시즘이 강해지는데 인정받을 수단까지 마땅찮은 경우 결국 스멀스멀 피어오른 악의로 주변에 고통전가를 하게 되기 쉬운 듯 

그래서 결론은 하루빨리 많은 사람들이 종교든 명상이던 창작이던 병원이던 치료법을 찾아내 자아의 허상을 깨닫고 고통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거야
다~~~ 나 편하자고 하는 소리라 이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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