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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아름다운 (그리고 빡센) 순례길

김제 아름다운 순례길을 걷고왔다. 전주에 갈 일이 있었는데 하루만에 날씨가 겨울에서 여름으로 바뀌어 버리길래 충동적으로 떠났다.전주역에서 순례길 초입인 금산사 까지 한번에 가는 79번 버스를 올라탔다. 내가 이 교통편을 왜 알고 있냐면, 10년 전 이맘 때 혼자 여행을 온 적이 있기 때문이다.금산사 근처에서 캠핑을 하룻밤 하고 순례길을 걸은 뒤 다음날 전주영화제를 보고 서울로 올라갔었다. 개막식이 지루했고 마지막에 뭔 개그맨이라는 사람이 사회자랑 태권도 하고 들어가는 거 보고 이민을 꿈꾸었던 것을 기억한다. 영화제에 대한 전주시민들의 열정은 멋지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길이다. 봄의 연두색 잎사귀들과 귀신사의 고요한 전경이 특히 기억에 남는데 10년 만에 다시 보면 어떠려나? 버..

사진 2025.04.19

나쁜놈

내가 아는 인간 중 제일 나쁜 놈이 A였다. 범죄자였고 죄질이 상당히 불량했다. 생계형 범죄 그런 거 아님어느 날 A와 대화를 하는데 A가 여기 사람들 다 외강내유라고, 나쁜 놈인 척 하는데 사실 제일 여리고 착하잖아, 라는 말을 했다. 그 ' 여기 사람 '들에는 당연히 A 그 자신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인간도 스스로는 착하다고 생각하는구나,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2차 충격파가 몰아쳤다. 그렇다면 나도 나쁜 놈일 수 있겠구나허구헌날 위선을 욕하고 아닌 척 하면서도 스스로를 선량한 인간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구나수년 후 A 모친의 인터뷰를 우연히 읽게 되었다. 가정폭력에 시달렸고 자살시도를 수차례 했다는 내용이었는데A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은 한 번도 없었음으로 조금 놀..

2025.04.14

oman

같이 명상하는 분 중에 말을 매우 겸손하게 하시는 분이 있다. 사실 겸손은 좋게좋게 표현한거고 내가 보기에는 지나치게 저자세인 감이 있어서 아 좀 저러지 좀 말지 언어의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행위 궁시렁궁시렁 so K..하면서 속으로 못마땅해 하고 있었다. 저번 코스를 그 분과 같이 하게 되었다. 마지막날 기분이 좋아서 말을 걸어 보았다. 이럴수가 성폭행 피해자 상담사로 근무하시는 분이셨다.말 한마디 한마디를 조심해야 하는 직군에 계셨던 것이다. 안 하면 일을 계속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명상을 하는 이유도 있다고 하셨는데 아무튼 부끄러웠다. 그래도 상담까지 하러 오는 피해자들은 강한 사람들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2025.04.13

내가 제일 무식한 자리가 개꿀임

일전에 홍긔하씨가 뭔 철학교수들 오는 파티에 가야 된다고 후달린다는 이야기를 함당신이 무식한 사람들 볼 때 느끼는 기분을 그 사람들이 당신보고 느낄까봐 그러는 거지! 하니까 맞다 하길래 잠깐 생각에 잠김스무살 때 쯤 본 토탈이클립스 랭보 대사 중에 라는 게 있었는데. 저 말에는 꽤나 공감했다. 그래서 싸이월드 메모장에 적어놨더니 숄티캣의 홍유정 양이 무서워ㅜㅜ 그렇게 보지 말아줘 라고 답글을 달아서 빵 터졌던 기억이.. 아 근데 하려던 말은 이게 아니고 원래 내가 제일 무식한 자리가 개꿀임그 반대가 최악이고 내가 제일 박식한 집단에서 지내다 보면 분조장이랑 정신병 생김 내가 남 때문에 고통받느니 남들이 나 때문에 좀 고통받는게 낫지 그래서 무식하면 개꿀이라 이거야 유남쌩?

2025.04.12

우와앜 죽기싫어 : 슬픈 불멸주의자

여름 밤 젊은 작가들과 강변에 앉아 있다 나온 이야기이다. 한 분이 자기는 가능하다면 영생이 하고 싶다는 말을 했는데 그러자 다른 한 분이 지친 표정으로 ' 참 신기하네. 나는 죽으면 좋을 거 같은데..' 라는 말을 했다. 몇 달 뒤 죽으면 좋을 거 같다는 분을 다시 만나서 ' 왜 자식 안 낳아요? ' 라고 물었다.그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웃으며 ' 사주 봤는데 애 낳으면 죽는다고 해서요.. ' 라며 말 끝을 흐리길래 나는 약간 혼란스러워졌다. 하지만 두 발언 모두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모순된 것처럼 보이지만 말이 되는 것이었다. 이 사람은 죽음이 너무 두려운 나머지 죽음을 원하게 된 거구나.마치 단거리 경주 시작 전 팽팽하게 긴장된 상태를 버티기 어려워 신호 총이 울리기 전에 뛰쳐나가 버리고 ..

의식의 세계 2025.04.12

동네 미용실

오래된 동네 미용실에서 교환되는 정보의 량에 대해 알게 되면 남자들은 놀랄겨정말 모든 이야기가 다 나옴 그리고 먹을 것도 나옴저번엔 심지어 숟가락 들고 밥 먹으라고 하시길래 그건 거절함오늘은 땅콩 캬라멜이랑 롤리폴리를 주워 먹으며 원장님(69)이 23년간 막걸리를 부어가며 기른 군자란 이야기를 들었음 시장 쪽에도 잘 하는 집이 있는데 거긴 원장님이 직원을 너무 구박해서 보고 있는게 고역임 방문할 때마다 학대의 강도가 높아지고 있고 원장님의 음주빈도를 고려하면 전두엽에 손상이 오기 시작한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듬근데 여기는 혼자 하시고 동네 할머니들 사랑방 느낌이라 맘이 편함 정치 얘기도 맨날 나오는데 상당히 민주적임이재명 지지발언을 해도 되고 윤석열 지지발언을 해도 되는데다른 사람한테 누구 지지해라 말어..

2025.04.10

챗봇과 자살

며칠 전 지선생과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아니 사실 대화도 아니지 대화의 뜻은 마주 대하고 이야기를 주고받음이자너성별을 물어본 이유는 무슨 일 있어? 괜찮아? 가 너무 작업멘트 같아서..암튼 그러다 묵묵히 있어듀돼 ㅇㅈㄹ하길래 킹받아서 종료했는데 다음 날 아래의 기사를 읽었음 https://www.spiegel.de/international/zeitgeist/artificial-intelligence-a-deadly-love-affair-with-a-chatbot-a-e5498031-c2b0-4da4-9192-65da9d3f40d6 Artificial Intelligence: A Deadly Love Affair with a ChatbotSewell Setzer was a happy child - befor..

의식의 세계 2025.04.09

pronouns에 대한 생각

몇년 전 외국에 사는 친구에게 아는 커플 아기가 태어난지 일 년이 넘었는데아들인지 딸인지 아직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음왜냐면 부모가 아기가 자라서 주체적으로 성별을 결정하기를 바래서그 전까지 사람들이 애를 여아나 남아로 취급하면 아기에게 선입견(?)을 주입하게 될 수 있으니 성별을 비공개하기로 한 것이라고그래서 파티 같은데서 만나면 애기를 it 이라고 불러야 된다는데 사람을 물건처럼 호칭하다 보니 친구는 기분이 좀 이상하다는 이야기 듣고나서 반사적으로 떠오른 문장은 가지가지 하네 였음 그 홀 에피소드가 넘나 백인스러워서 킹받기도 했고 근데 몇 년 지나니까 내가 아는 사람들도 SNS 프로필에 she/her he/him을 적어두기 시작함영미권에선 이로 인해 꽤 많은 사회적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고 하..

남성과 여성 2025.04.08